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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구독제 해지 버튼은 찾기 힘들까?

각설하고 바로 알아보자

by 고석균

넷플릭스, 멜론, 쿠팡플레이… 요즘은 생활 곳곳이 구독 서비스로 가득합니다. 한 달에 몇 천 원이면 언제든 원하는 콘텐츠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여러 구독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해지하려고 하면 이상한 경험을 하죠. 가입은 단 1분이면 되는데, 해지는 버튼이 잘 보이지 않거나 여러 단계를 거쳐야 겨우 가능하다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건 기업이 일부러 불편하게 만든 것 아닌가?”라는 의심을 합니다. 사실 이는 단순한 UX(사용자 경험) 문제가 아니라, 경제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전략입니다. 기업 입장에서는 소비자가 구독을 유지할수록 매출이 늘어나기 때문에, 해지 과정을 어렵게 만들어 해지율을 줄이고 고객 생애가치(LTV)를 늘리는 효과를 얻습니다. 소비자는 해지를 미루게 되고, 기업은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경제학적으로 볼 때, 왜 이런 전략이 효과적일까요?


전환비용을 높이면 가격을 높이지 않아도 가격차별의 효과가 생긴다

구독 서비스에서 해지 버튼을 찾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소비자의 전환비용(Switching Cost)을 높이는 전략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전환비용이란 소비자가 다른 서비스로 갈아탈 때 발생하는 불편, 시간, 금전적 비용을 말합니다. 이렇듯 해지 절차를 복잡하게 하면, 소비자가 느끼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 증가해 해지를 미루게 됩니다.


또한 소비자는 항상 가격과 효용을 비교해 합리적으로 선택한다고 가정하지만, 해지 과정의 번거로움은 마치 추가적인 ‘가격’처럼 작동해 실제 효용 계산을 왜곡하게 됩니다. 기업은 이를 이용해 간접적으로 가격차별(Price Discrimination) 효과를 얻습니다. 가격차별이란 동일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입자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판매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근데 가격을 별도로 만들거나 조정하지 않았는데 가격차별의 효과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자세히 상황을 들여다보면 해지하려는 소비자 중 일부는 높은 전환비용을 감수하고 끝까지 해지하지만, 상당수는 불편함 때문에 계속 구독을 유지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마다 다른 ‘실질 가격’을 내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1만 원짜리 OTT를 해지하려는 소비자가 있다고 합시다. 해지 버튼을 바로 누르면 1만 원 절약이지만, 찾는 데 30분이 걸리고, 고객센터 전화까지 해야 한다면 소비자는 시간과 노력을 비용으로 인식해 차라리 유지하기로 합니다. 결국 미시경제학적으로 해지 버튼을 숨기는 전략은 소비자의 합리적 선택 구조에 ‘추가 비용’을 인위적으로 삽입하여, 수요를 유지하려는 기업의 이익 극대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를 정리해보면

- 해지까지 불편을 감수하는 사람들 : 버튼을 찾고, 고객센터 전화까지 하고, 시간을 들여 해지에 성공합니다. 이들은 본래 가격(예: 월 9,900원)을 지불하지 않고 서비스 이용을 중단합니다.
- 불편해서 해지를 미루는 사람들 : 구독을 유지하면서 매달 돈을 계속 냅니다. 사실상 이들은 불편 비용 + 구독료를 합친 더 높은 실질 비용을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행동경제학적으로 본 해지버튼 숨기기의 비밀

구독 서비스를 해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단순히 버튼이 작아서가 아닙니다. 우리의 심리적 편향을 교묘하게 건드리기 때문이죠.


첫째, 현상유지 편향(Status Quo Bias)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결정을 내리는 것보다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 데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예를 들어, 넷플릭스를 해지하려다 “지금 보던 드라마 끝나고 하지 뭐” 하고 미루는 게 대표적이죠.


둘째, 인지적 과부하(Cognitive Overload)입니다. 해지 과정이 여러 단계로 복잡해지면, 뇌가 피곤해져 결정을 미루게 됩니다. 마치 인터넷 쇼핑몰에서 10단계로 결제를 진행해야 한다면, 그냥 포기하고 뒤로 가기를 누르는 것과 비슷합니다.


셋째, 손실회피 성향(Loss Aversion)입니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해지를 생각하면서도, “혹시 다음 달에 꼭 보고 싶은 콘텐츠가 나오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OTT 서비스가 해지 직전에 “이 특별 혜택을 놓치시겠습니까?” 같은 문구를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현재편향(Present Bias)도 작용합니다. 해지를 진행하는 번거로움은 지금 당장 크게 느껴지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9,900원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두자” 하고, 장기적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단기적 편안함을 선택하게 되는 겁니다.


결국 해지 버튼을 숨기는 건 단순한 디자인 문제가 아니라, 현상유지·손실회피·현재편향 같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소비자가 스스로 해지를 미루도록 만드는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 다크패턴, 개정 전자상거래법 시행

한국에서는 2025년 2월, 온라인 다크패턴 규제를 위하여 개정된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전자상거래법’), 동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이 2025. 2. 14. 시행될 예정입니다. 앞서 구독해지 버튼을 어렵게 만드는 ux, ui를 법에 의해 전면 개선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KakaoTalk_20240509_130738060-1-1200x600.jpg 쿠팡의 다크패턴. 혜택 포기를 작게 보이게 하고 혜택 유지를 잘 보이게 배치하였다.

국내에서도 넷플릭스·멜론·쿠팡플레이 등 구독 서비스 해지의 어려움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쿠팡의 경우 쿠팡와우 등의 요금제를 해지하기 어렵게 만들어 두었습니다. 이에 따라 2024년 공정거래위원회가 “해지 절차 간소화 가이드라인”을 발표하였고, 2025년 다크패턴을 통해 규제를 할 예정입니다. 이를 통해 온라인 사업자는 해지 버튼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UI/UX를 개선됩니다.

자동결제 해지를 “가입만큼 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 개정이 논의 중입니다.




구독 서비스에서 해지 버튼이 숨겨져 있는 것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경제학적으로 설계된 전략의 일환입니다. 각 내용을 정리하면,


미시경제학적으로는 해지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어 소비자의 전환비용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간접적인 가격차별 효과를 얻습니다.

행동경제학적으로는 현상유지 편향, 손실회피 성향, 현재편향 등 우리의 비합리적 심리를 자극해 소비자가 스스로 해지를 미루게 만듭니다.

정책적으로는 이를 ‘온라인 다크패턴’으로 보고,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서 구독 해지를 “가입만큼 쉽게” 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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