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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do?" 우리는 왜 잡스의 성공을 좇는가

‘감으로 결정하는 CEO’의 순간, 전략이 될 수 있을까?

by 빛날수있게


‘그냥! 그게 맞아!’ 직관에 의한 결정. 기업의 전략이 될 수 있을까?


"왜 그걸 선택했어?"

"그냥"

얼마나 무책임한 답인가요, 회사 면접에서 하지 말아야 할 대답 1순위겠죠.

그런데, 이 말을 우리의 CEO들은 참으로 많이합니다.


사무실에서는 이런 장면이 늘상 되풀이 됩니다.



실무자의 눈에는 논리적 근거가 부족해 보이는

전략 결정이,

CEO의 한 마디 “그냥 이게 맞는 것 같아” 에 의해 밀어붙여지는 순간입니다.


엥 그런데?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그 결정이, 때로는 예상 밖의 대성공을 이끌어내곤 합니다.


이런 경험은 조직에 두 가지 감정을 남깁니다.


하나는 직관이 만들어낸 성과에 대한 놀라움,

또 하나는 그것이 단지 운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회의감입니다.






정말 직관이란 그저 비이성적인 충동일까요?

아니면 설명되지 않을 뿐, 그 안에도 일종의 ‘사고의 질서’가 숨어 있는 걸까요?


이 포스트에서는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이성과 직관 사이에

긴장(intuition–rationality tension)이 존재한다는,

둘 사이의 관계성을 탐구한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그 긴장을 유지한 채 받아들이는 방식이

어떻게 더 창의적이고 현실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논의해보겠습니다.




"우리는 왜 '잡스'의 직관을 좇는 걸까?"


2005년, 애플은 두 개의 휴대폰 개발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존 iPod 클릭휠을 활용한 안정적인 모델(P1),


다른 하나는 정체불명의 멀티터치 기술을 기반으로 한 실험적 모델(P2)이었습니다.


많은 엔지니어는 P1이 현실적이라 여겼습니다.

클릭휠은 익숙했고, 이미 완성된 인터페이스였으니까요.
반면, P2는 너무 새로운 접근이었습니다. 멀티터치 디스플레이? 화면만으로 조작?
기술적 가능성조차 불확실했습니다.


그런데, 스티브 잡스는 P1 프로젝트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Honestly, we can do better guys.”


그리고 P2 프로토타입을 본 직후, 망설임 없이 선언합니다.

“We all know this is the one we want to do. So let’s make it work.”


그에게는 아직 아무런 사용자 피드백도, 시장 조사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직관이 방향을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죠.


이 멘트는 단순한 확신의 표현이 아니었습니다.
‘안전한 선택’을 거부하고, 불확실성을 감수한 채 미래를 선택한 선언이었습니다.


그 후 애플은 P2를 기반으로 iPhone을 만들었고,
이 직관적 판단은 결국 모바일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꾼 결정이 되었습니다.


https://www.wired.com/story/iphone-10-jony-ive-project-purple-cult-of-mac/





직관 vs 이성,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전략의 긴장’

스티브 잡스의 한 마디처럼 보였던 결정
"그냥 이게 맞아"는 사실 단순한 감각이나 충동의 결과가 아니었습니다.

그 결정은 오랜 경험, 직관적 학습, 그리고 디자인 철학이 만들어낸
무의식적 사고의 압축된 결과였던 것이죠.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이러한 직관 기반 결정이 불안과 회의를 낳는다는 점입니다.
"운이 좋아서 된 것 아니야?"
"다음번에도 저렇게 하면 실패하는 거 아냐?"


특히 이러한 의구심은 특정 인물의 직관에 조직 전체의 방향이 의존한다는 점에서,
결국 장기적인 의사결정 불균형이나

인물이 없는 이후의 재현 불가능한 구조라는 문제를 야기하곤 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물었습니다.
"직관은 어떻게 이뤄지는 것이며, 이성과는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는가?"


Calabretta et al. (2016)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들은 전략적 의사결정의 실제 현장을 추적하며,
직관과 이성이 결코 별개의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인 긴장 속에서 함께 작동하는 ‘이중적 사고 구조’임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이 둘의 충돌을 단순한 갈등이나 오류가 아닌,
더 나은 전략과 창의적 사고를 이끄는 원천으로 바라볼 수 있는 프레임
바로 ‘역설(paradox)’의 관점을 제시합니다.


[출처]

Calabretta, G., Gemser, G., & Wijnberg, N. M. (2017).

The interplay between intuition and rationality in strategic decision making: A paradox perspective. Organization Studies, 38(3-4), 365-401.

https://journals.sagepub.com/doi/full/10.1177/0170840616655483





직관과 이성, 둘 다 필요한데 왜 갈등이 될까?


ChatGPT Image 2025년 7월 15일 오후 02_25_56.png


직관과 이성은 모두 전략적 의사결정에 꼭 필요한 사고 방식입니다.

직관은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방향을 제시하는 데 탁월합니다.

반면, 이성은 복잡한 정보를 구조화하고, 논리와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을 검증하는 데 강점을 지니죠.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고방식이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한다는 데 있습니다.


이성은 “왜 그렇게 결정했는가?”에 대해 재구성 가능한 설명을 요구합니다.

반면, 직관은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는 설명 불가능한 확신을 따릅니다.


이 둘이 동시에 존재하면, 조직 안에서는 이런 갈등이 자주 발생합니다


“왜 이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냥 그게 맞는 것 같아.”
“...그게 답이면, 우리는 뭘 근거로 따라야 하죠?”


이처럼, 직관은 이성의 언어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근거 없음’으로 오해받고,
이성은 직관의 속도와 감각을 따라가지 못해 ‘느리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 결과, 많은 조직에서 이성과 직관은 서로를 배제하거나 우선순위를 다투는 경쟁 관계로 이해됩니다.


실무자는 데이터를 요구하고, 리더는 직감을 믿으며, 그 사이의 신뢰와 소통의 단절이 벌어지는 것이죠.


하지만 Calabretta et al. (2016)은 바로 이 지점에서 중요한 전환을 제안합니다.
직관과 이성은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하는 긴장된 관계이며,
이를 억누르거나 통합하려 하기보다, 긴장 그 자체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긴장(tension)’은 싸움이 아닙니다.

오히려 양쪽이 당기고 버티며 균형을 잡는 상태입니다.






"이성과 직관의 긴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자!"


-연구를 통한 검증-


이 연구는 복잡한 수치나 수식 대신,
"실제로 전략을 짜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관찰하는 데 집중합니다.


연구자들은 네덜란드의 유명 디자인 컨설팅 기업에서 진행된
7개의 전략 프로젝트 현장을 추적하며,
직관과 이성의 실제 충돌 장면들을 ‘몰래카메라처럼’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1) 사람들이 언제 직관을 사용했고
2) 어떤 순간에 이성적 논리를 끌어왔으며
3) 둘이 충돌할 때 어떤 갈등과 조정이 있었는지를
실제 회의, 인터뷰, 메일, 프레젠테이션 자료 등을 통해 꼼꼼히 분석했죠.


예를 들어


디자이너가 “이게 느낌상 맞아요”라고 주장하자,
클라이언트가 “그 느낌, 엑셀로 설명해보세요”라고 반문하는 순간

기획 초안에 대한 데이터 검토가 끝났지만,

누군가는 “왠지 아닌 것 같다”는 이유로 다시 방향을 바꾸는 장면



연구자들은 이런 장면들 속에서

직관과 이성의 갈등과 협상, 그리고 그것이 결국 전략적 창의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을 발견합니다.







마치 텐트를 팽팽하게 고정시키는 줄처럼,
직관은 아이디어를 빠르게 확장하게 만들고,
이성은 그것을 구체화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합니다.


Calabretta 연구팀은 이 긴장을 무리하게 해결하려 하거나 한쪽을 억누르면,
오히려 전략은 창의성을 잃고, 현실과도 멀어진다고 경고합니다.


대신, 이 긴장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수용하는 것,
그리고 상황에 따라 두 방식을 유연하게 오가는 능력
진짜 전략가에게 필요한 자질이라고 제안합니다.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연구는

"긴장 수용 – 통합 – 내재화"라는 3단계 역설적 사고 모델을 제안합니다.



1242.PNG "긴장 수용 – 통합 – 내재화" 3단계 역설적 사고 모델. Calabretta et al. (2016)






직관과 이성의 긴장을 다루는 세 가지 전략



Calabretta 연구팀은 직관과 이성 사이의 긴장을 무조건 해결하려 들지 말고,
그 긴장을 전략적으로 다루는 능력을 기를 것을 제안합니다.
그들은 이를 3단계의 사고 프레임으로 정리합니다.


원문의 프레임워크는 Preparing the ground – Developing the outcome – Embedding the outcome 라는 용어로 설명되고 있고 여기서는 보다 쉬운 이해와 적용을 위한 의미적 대체가 이뤄졌습니다.


1. 수용(Accepting)

이 단계는 긴장을 문제로 보기보다 존재하는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직관은 논리를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정보처리 메커니즘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회의에서 “근거가 뭐죠?”보다는
“그 직관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요?”라고 묻는 방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2. 결합(Combining)

수용 이후에는 직관과 이성을 상호보완적으로 사용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직관으로 나온 아이디어를 이성으로 검증하거나,

이성으로 분석한 결과를 직관으로 다시 감각적으로 조율하는 등의 순환이 이루어집니다.


“prepare the ground → develop the outcome → partial return to rationality”

라는 역동적인 흐름으로

연구에서는 분석적 사고가 직관적 통찰을 유도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3. 내재화(Embedding)

최종 단계는 직관과 이성이 따로 작동하지 않고
조직 내에 자연스럽게 통합되어 내면화된 상태입니다.


여기서는 시각적 도구, 프로토타입, 피드백 루프 등의 물질적 수단(material artifacts)이
이전에는 감각적인 것으로만 여겨졌던 직관을

'보이는 언어'로 바꿔주며 조직의 전략 실행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모델은 단지 개인의 사고 훈련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조직 전체가 지속가능한 '전략적 감각(strategic sensibility)'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이 때에

Embedding(내재화) 단계는 단순한 통합 이상으로, 지속가능한 전략 감각의 구축을 의미하며,
시각화, 도구화, 감각 자극을 통한 체화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더불어, 연구팀은 직관이 이성의 하위 개념이 아닌 동등한 파트너라는 관점을 분명히 하며,
전통적 이성 중심 전략 이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직관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요? - 훈련으로 잡스처럼 되어보기



직관적 결정을 존중하자는 말은,
“감 좋은 사람만 전략 짜세요”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직관은 누구나 훈련하고 확장할 수 있는 사고 방식이라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1) 연구를 통한 논증적 방식과 2) 유명한 영화 감독의 일화의

두 가지 방식을 소개드려보겠습니다.


먼저,

Barrera Garza, B. P., & Self, J. A. (2023)

의 연구는 디자인 사고 과정에서
직관이 단지 내면의 감각이 아니라,
두 가지 경험 기반의 작동 메커니즘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Barrera Garza, B. P., & Self, J. A. (2023).

The Dual Drivers in Intuitive Design Thinking: Myself and Making.

https://www.researchgate.net/publication/376217990_The_Dual_Drivers_in_Intuitive_Design_Thinking_Myself_and_Making



1. Myself – 내면의 메타인식

직관은 단순히 떠오르는 영감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 감정, 가치관, 기억 등이 축적된
자기 인식(self-awareness) 기반의 판단입니다.


이러한 메타인식은

“왜 이게 맞는 것 같지?”라는 막연한 느낌을
의식적 사고와 언어로 설명 가능한 상태로 전환하게 해줍니다.



2. Making – 손으로 익히는 감각 훈련

또한 직관은 ‘손으로 생각하기(thinking through making)’에서 비롯됩니다.
직접 만들고, 만져보고, 조정해보는 반복적인 실험 속에서
몸과 감각은 점차 상황을 읽는 능력을 키워나갑니다.


이 과정은 실패를 포함하며, 반복을 통해 다듬어집니다.
즉, 직관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에술가의 작업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Mulholland Drive 멀홀랜드 드라이브, Blue Velvet 블루벨벳을 제작한

꿈과 현실, 일상과 비일상 사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영화 감독 데이비드 린치(David Lynch)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했습니다.


데이비드 린치는 직관을 유튜브에서 직접 설명하기도 했는데요,

“Intuition is the intellect and emotions swimming together. It’s like a knowingness.”


또 자신의 책 《Catching the Big Fish》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Ideas are like fish. If you want to catch little fish, you can stay in the shallow water. But if you want to catch the big fish, you’ve got to go deeper.”


이는 표면적인 직관이 아니라, 명상 등을 통해 내면 깊이 집중했을 때 비로소 강력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인

큰 물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Catching_the_Big_Fish



https://youtu.be/3DeLfS6CMns?si=h0kVmkF23on6T9zB


그는 이렇게 간단한 생활 속 실천법을 알려주기도 했는데요,

직관이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면,
일상 속에서 떠오르는 작은 아이디어 조각(fragment)에 주목하고,
그것을 말·글·그림·행동 중 하나로 빠르게 표현해보세요.

그 한 조각이 내면의 창의성을 깨우는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직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 깊이 있는 경험과
- 맥락 전체를 파악하려는 태도에서 길러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략적 직관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감이 없다”를 탓하기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패턴들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더 관찰하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의사결정의 맥락을 체득하려는 노력
결국 ‘감’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전략적 직관과 이성을 조율하기



“그냥, 이게 맞는 것 같아.”
이 말은 더 이상 무책임한 직감의 대명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축적된 경험, 깊은 자기 인식, 반복적 만들기,

그리고 이성과의 팽팽한 긴장 속에서 길러진 전략적 직관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스티브 잡스의 통찰력에 감탄하면서도,
그 판단을 재현할 방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연구는 말합니다.


직관은 설명할 수 없을 뿐, 훈련되고 재현 가능한 판단 방식이라고.

따라서 중요한 것은, 이성과 직관 사이의 긴장을 억누르거나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팽팽함을 인식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왜 그런 결정을 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냥"이라고 답하는 사람에게,

"어디서 비롯된 감일까요?"라고 다시 묻는 태도에서 시작됩니다.



직관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기르고, 해석하고, 공유할 수 있는 하나의 전략적 자산입니다.
이제는 그 감각을 두려워하기보다, 다듬고 꺼내어 쓰는 시대입니다.
당신의 전략에도, 그 ‘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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