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어플에서 만난 남자(1)

[퀴어에세이] 호주 편

by 혜성

여행 차 호주 브리즈번에서 1주일쯤 묵었을 때 일이다. 멜버른과 시드니를 한 달 정도 여행하고 온 터라 브리즈번이 큰 도시인데도 내겐 조금 시시하게 다가왔다. 하루 이틀은 보낼만했지만 너무 오래 걸은 탓에 누적된 피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는 커피를 사 들고 잔디밭에 누워 게이 데이팅 어플을 열어봤다. 당시 내 남자 친구는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우리는 매일 통화를 주고받았다. 장거리 연애를 시작하고 한 가지 규칙을 정했는데, 육체적으로 떨어져 있는 동안은 다른 사람을 만나도 눈감아 주겠다는 것이었다. 약간의 죄책감은 있었으나 변명을 하자면, 사람과의 접촉을 통한 자극이 유독 필요하다고 느꼈다.



메시지는 꽤 왔다. 나름 잘생긴 편에 속한다고 오만했기에, 만약 메시지를 받지 못했다면 꽤 실망했을 것이다. 보낸 사람들의 상당수는 나와 같은 단기 여행자들이었다. 일단 이들은 내 경험상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젊은 편에 속한다면 욕망 분출할 마땅한 공간을 못 찾아서 불발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20분 동안 대화하다 ‘장소가 없으니, 다음에 하자’로 마무리하고 결국 의미 없이 시간만 소비하게 되는 꼴이 되기 쉽다. 하지만 당신이 한 달 정도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 농장일을 구하고 있는 며칠 전 사귄 프랑스에서 온 피터처럼 자유롭고 낯이 두껍다면, 10명이 한 공간에서 잠자고 있을 때 섹스를 할 수 있다면 선택을 존중한다. 다른 하나는 호텔에 가족 없이 혼자 묵으면서 젊은 아시아인을 초대하는 나이가 든 사람이라면, 그건 그다지 유쾌한 일은 장담컨대 아니다.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 귀염상 일본인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나는 일단 이야기를 먼저 하자고 했고, 그는 자기가 자주 가는 한국 음식점으로 가자고 했다.



그를 보자마자 어플 상의 그의 신상정보가 꽤 왜곡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실망했다. 내 키는 178cm인데 데이터상으로 그와 아래로 3cm 차이였지만, 그가 거짓으로 기재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사진 속 그와 실제 얼굴은 묘한 간극이 있었는데, 내가 귀염상이라고 느낀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내 기대와는 달랐다. 그는 어떤 각도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먹힐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그는 비자가 거의 끝나간다는 것과 호텔에서 거의 1년을 일했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그는 자기만의 방이 있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그 친구는 영어에 미숙하기 때문에 긴장해서 하는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했고(사실은 내가 그 정보에 관심이 전혀 없어서), 예의상 미소를 지어주곤 의미 없는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 사람들은 다 잘생겼어.’ 그가 단언하듯 말했다. 순간 이 친구가 나를 칭찬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아까부터 떠들던 BTS에 관한 이야기인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그가 어떤 식으로 자신의 명제를 뒷받침해 나아갈지 조용히 기다렸다. 그는 멤버들의 이름을 대면서 뮤직비디오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조금만 눈치 있는 사람이라면 내 영혼 없이 반응을 읽었을 텐데도 그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혹시 근처에 게이바 있어?’ 내가 물었다. 이 질문은 조금 뜬금없었다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것과 나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가 날 침대로 끌고 가기 위해서 내 기분을 좋게 만들려는 수작임을 눈치챘기 때문에 그의 노력을 잘라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혹시 우리가 게이바에 간다면 내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를 만날지 혹은 그가 나한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다른 남자와 귀가를 할지. 전자든 후자든 어쨋튼 나쁘지 않았다. '갈래?' 그는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04. 진정해, 해치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