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더블룸!?

[퀴어에세이] 당신은 공감 못할 이야기

by 혜성

우린 지방에 사는 게이 커플이다. 나는 한국인이고 내 애인은 아일랜드인이다. 우린 자주 서울에 놀러 가곤 하는데, 주로 호텔에서 숙박을 해결하곤 한다. 프로모션 하는 곳으로 예약하기 때문에 항상 같은 곳으로 가진 못한다. 그렇다 보니 호텔에서 겪은 일들이 꽤 있는데, 그중에서 아직도 우리 입에 오르내리는 사건이 있다. 동성커플이 아니라면 겪기 힘든 일이지 않을까 싶다.


우린 주로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해 호텔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프로모션은 당연하고 호텔 위치나 창문의 여부 등 방 옵션 몇 개를 체크하는데, 그중에서 우린 ‘더블 배드’를 선호하는 편이다. 없어도 상관없다. 이유야 간단하다. 2년을 사귀고 있지만, 우린 아직도 이야깃거리가 정말 너무 많다. 길거리를 걷다가 어르신들이나 꼬마들이 외국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이야기나, 서로의 직장동료 이야기,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 고민들, 책이나 한국과 아일랜드 문화의 등등등.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말하고 들으면서, 잘못된 인식이 있다면 지적해주기도 하고 서로 다른 점이 있으면 인정해주고 넘어간다. 그러다 보니 우린 자기 전까지 끊임없이 떠든다. 만약 따로 떨어진 침대에서 이야기를 하다면, 어쩐지 집중도 되지 않고 소곤거리면서 만드는 우리만의 세계가 약해진 기분이 들곤 한다. 또 다른 이유로, 우린 아직 동거를 하지 않는다. 계획을 세우고는 있지만 함께 잠자리에 드는 날이 자주 없다. 그렇기에 푹신한 호텔 침대에서 서로 껴안고 자는 건 가끔 있는 여행에서 느끼는 조금 특별한 이벤트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트윈 배드’로 할 이유가 우리에겐 없었다.


한 번은 호텔 체크인을 하는데, 외국인 카드(Alien card, 우리 둘 다 이 단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를 요구했고, 카드를 받아 든 40 후반에서 50대 정도의 남자 직원은 예약 내용을 모니터로 훑어보더니,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서 자신이 방금 발견한 오류에 대해 스스로가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두 분이 지금 더블 배드 룸을 선택하셨거든요. 예약을 하면서 실수를 하신 것 같거든요?’ 그는 혹시 우리가 실수라는 단어를 부정적으로 여길까 봐 끝을 살짝 올려 완화시키려고 한 듯 보였다. 우리의 귀를 의심하듯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해야만 했다. ‘실수가 아니라 그게 맞아요.’라고 애인은 당당하게 되받아쳤다. 호텔 직원은 물러서지 않았다. ‘남자 두 분이라 침대 하나는 많이 불편하실 거예요.’ 나는 고지식하고 자신이 굉장히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이 아저씨에게 반항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저흰 아주 야한 짓을 할 거라서 큰 침대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나는 최대한 정중하고 비꼬거나 저항감이 없는 친절한 말투로 그리고 예의를 차리고 (굉장한 노력이 필요했다) ‘정말 감사하지만 저흰 괜찮습니다.’라고 말했다. ‘네, 그럼 이대로 할게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자신의 친절은 온당했다고 시위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린 카드키를 받아 들고 방으로 향하는 동안, 그 주제로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는 속으로 *’Can we have a double room with double beds for double sex’라고 외쳤다고 했고,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다며 둘이서 킥킥대고 웃었다.



*넷플릭스 시리즈 ‘The end of the fucking world’에서 여주인공 알리사의 대사를 인용했다. 당시 우리가 재미있게 보고 있던 시리즈였다. 혹시 안 보셨다면 추천합니다 :)


MV5BZDQzMzdhZTEtOWI0Mi00ZWQyLWJhMDktZTcxMThiZGVjYTZjXkEyXkFqcGdeQXVyNjYyNDMwOQ@@._V1_.jpg 청소년 커플이 더블룸을 주문하자 미심쩍은 듯 쳐다보는데, 알리사가 'A double room, with a double bed for double sex'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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