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에세이]내가 어플로 만난 남자들.
내가 데이팅 어플로 만난 남자 중에 연민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정식으로 사귀진 않았지만, 서로의 취미나 성향을 파악할 만큼 만난 기간은 꽤 길었다. 나보다 5cm 정도 작았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몸매를 가진 경상도에서 온 남자였다. 그는 노래방을 좋아했는데, 감정의 해소와 음악이 주는 즐거움을 느끼기보단 자신의 성량과 실력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보였다. 그는 자신의 매력을 보여주려고 신경을 많이 쓴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관심도 없는 자기 시계 컬렉션을 보여주고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곤 했다.
우리의 데이트 코스는 진부하기 짝이 없었다. 주말에만 만났는데, 항상 밤에 만났고 커피를 마시고 노래방을 들려 모텔로 갔다. 만나는 장소도 번화가가 아닌 한산하고 외진 곳이었다. 한 번은 내가 물어봤는데, 자신의 정체를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렵다고 했다. 한국의 닫힌 게이 문화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은 일이었다. 사내놈으로 태어났으면 유교사상에 힘입어 어르신들이 옮다고 하는 길을 따르고, 때 되면 결혼하여 자손을 재생산하는 것을 지상 최대의 명령을 살아야 한다. 자신의 주장을 하지 못하는, 그렇기에 숙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보수적인 성향의 게이. 그는 딱 그런 사내였다.
한 번은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드러난 날이 있었는데, 나는 그가 게이클럽을 가본 적이 있는지 물었다. ‘심장박동은 한번 가 봤어.’ 그가 장난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살짝 들었는데, 그의 미소에서는 어떤 위압감이 번뜩였다. ‘펄스(Pulse) 말하는 거야? 한국어로 말하니까 되게 이상하게 들려.’ 나는 번역된 모국어에서 주는 어색함을 곱씹으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네가 펄스라는 단어도 알아?’ 그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물었는데, 나는 순간 모멸감 비슷한 게 느껴졌고, 거기에 불쾌감까지 더해져 인상을 구기게 만들었다. 당시 나는 그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 그냥 웃어넘겼지만 그것은 내 자존심에 큰 타격을 줬다.
그는 거의 문자를 하지 않았다. 근무시간에 나란 존재는 심장박동이 없는 죽은 송장과 다를 바 없었다. 난 그의 현실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이 관계의 한계를 보았기에 만나지 않기로 결심하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난 그의 답장이나 읽음 표시가 사라지는 것을 보지도 않았고 차단했다. 그의 사과 한 번이면 모든 게 해결될 거란 나약함을 내 안에서 느꼈기에 비겁하지만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그로부터 2주 정도 후에 저장되지 않은 아이디로 메시지가 왔다. 그는 스무고개 하듯이 자신의 정체를 내가 먼저 알아채 주길 바라면서 장난을 치고 있었고, 나는 그가 정말 누군지 몰랐을뿐더러 기분이 불쾌해지기 시작하자 차단하고 싶었다. 그는 내 협박에 서둘러 자신임을 밝혔고, 자신이 지금 우리 집 앞으로 가려고 택시를 잡는 중이라고 했다. 늦은 밤이었기에 나는 다음에 만나자고 사정했지만 묵살당했다. 나는 여전히 이 관계에서 내 위치를 느꼈지만 그의 사탕 같은 달콤한 말과 행동은 그 모든 것을 무마하고도 남았다. 그는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에 도저히 갈 수가 없다며 나에게 와달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택시를 타고 그를 만나러 종로로 향했다.
가장 바쁜 시간에 종로에서 보자는 그의 말은 그가 일정 부분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사인처럼 들려서 기분이 좋았다. 그는 꽤 취한 것처럼 보였다. 누구랑 마시고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질투를 할 것 같아 참았다. ‘내가 여기서 제일 좋아하는 술집이 있는데 거기 파스타가 진짜 맛있어. 너한테 소개해주고 싶어.’ 두 발자국 앞서서 걷는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려 이야기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서울엔 친구가 한 명도 없어서 너 없인 너무 외로워. 근데 나 너랑 깊은 사이로 발전하고 싶어, 정말이야.’ 그의 말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것이 절박함이나 외로움에 기인한 것이든 아니면 하룻밤을 보내기 위한 발악이던 말이다. 자신이 자랑스럽게 차고 있던 시계를 풀어서 나에게 선물이라며 내 손목에 채웠다. ‘이런 거 필요 없어.’ 꿈을 꾸고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일로 기분이 좋으면서 언제 깰지 모르는 불안함이 날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난 그에게 이끌려 모텔로 향했고, 우린 그저 그런 섹스를 했다.
다음날 우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옷을 입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시계를 착용했다. 그는 해장을 하고 싶다며 국밥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 우린 조용히 밥을 먹고 그는 야구를 봤다. 그 이후로 그에 대한 감정은 물에 넣은 솜사탕처럼 사라졌다.
그 뒤로 두 번 정도 연락이 더 왔다. 그는 여전히 진심을 섞어 나를 그리워한다고 말했고 여전히 여러 사람들과 진지한 관계를 맺지 못했다. 나는 그가 훗날 여성과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서, 주말엔 등상이나 친구들과 술 마신다는 핑계로 몰래 다른 남성들과 모텔 한 구석에서 외도를 저지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정도로 그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미지를 맞추려는 동시에 본능적인 성적 끌림과 사투하는 사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