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어플에서 만난 남자(2)

[퀴어에세이] 호주편

by 혜성


우리가 간 브리즈번의 게이클럽은 활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우울한 장소였다. 근처의 술집은 저마다 독특한 색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려고 했으나 이 가게만큼은 특색 없이 조용하고 음침하게 그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것 같았다. 유일한 아시아인이었던 우리 둘은 맥주를 들이키며 따분한 이야기를 늘어놓아 주변의 분위기로부터 회피를 시도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우리에겐 공통점이란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쑥스러워하던 모습은 알코올로 가려졌고, 거절하는 내가 미안할 정도로 그는 끊임없이 추파를 던졌다. 나는 그가 택시 타는 모습도 보지 않고 서둘러 숙소로 돌아갔다. 이 모든 게 시간낭비였고 차라리 할 일 없이 도시를 배회하는 게 더 나을 뻔했다고 스스로를 매질했다. 문자가 울렸고 난 아까 일본인이 아직도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며 어플을 켜고 내용을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에게서 온 문자였다.


“아까 술집에서 봤는데, 잘 생겼어요.”


나는 수신자의 프로필을 켜고 그의 사진을 천천히 훑어보곤 술집에서 본 사람들의 인상착의와 얼굴을 대조해봤다. 사진과 실제 얼굴이 꽤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까 배웠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하지만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백인 남성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10살 정도 많았고 키와 몸무게도 비슷했다. 자기는 아까 집에 도착해서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다며, 나를 초대했는데 답장에 뜸을 들이고 있는 나에게 주소를 보냈다.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에 그에 응했고, 여차하면 다시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는 집 앞에 나와서 나를 기다려 줬다. 그는 평범한 몸매를 가졌고, 나이에 비해 젊어 보였다. 옷차림은 너무 튀지도 않으면서 편안해 보이는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내가 오는 걸 의식했는지 캐주얼하게 갈아입은 것 같아 보였다. 다양한 인종의 피가 섞인 듯한 그의 분위기는 연한 갈색빛이 감도는 그의 눈동자와 어울리지 않은 금발이 어울려 어디에서 속해 있지 않은 인상을 주었다. 탁자에는 이미 찌그러진 맥주 캔이 널브러져 있었는데, 아직도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걸 보니 성급하게 마신 듯했다. 자신의 저급한 맥주 취향을 부끄러워하듯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건넸다.


나는 이 남자와의 섹스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그의 매력을 살폈다. 그는 장난기가 많았으며 자기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다는 듯 생동감을 더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고, 나라면 어땠을지 생각해 보라며 참여를 유도했다. 그의 직장에서 벌어지는 일, 여행 계획들과 오랜 기간 파트너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는 희망사항까지 많은 것을 토해내기 바빴다. 그나마 내 흥미를 끌었던 일화는 그의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그는 기숙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는데, 꽤 보수적인 집단이라 자신이 게이라는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한다고 했다. 워낙 작은 동네라 시내로 나가도 따분한 식료품점 빼고는 아무것도 없기에 성자처럼 외지에 갇혀있다가, 방학 때가 되면 아버지 명의로 된 이 집에 와서 며칠 보낸다고 했다.


그는 적당히 취한 듯 보였고 이층 샤워실로 나를 이끌었다.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고 속옷까지 벗은 뒤 물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수도꼭지를 열었다. 가만히 흘러나오는 물을 가르고, 손을 넣어 천천히 감각에 집중해 있었다. 옷으로부터 해방된 그의 육체는 그렇게 탐스럽지 않았다. 이전의 방탕함을 후회하는 감옥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복역수처럼 그의 엉덩이와 다리는 볼품없이 앙상한 편이었다. 알코올의 힘을 빌리지 않았다면 나는 제대로 발기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는 나를 껴 앉고 샤워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를 최대한 기쁘게 하기 위해 정성 들여 나를 맛보기 시작했다. 따뜻한 액체들이 나를 감싸고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풀리는 것 같았다.


내 숙소에 돌아왔을 때는 새벽 4시쯤 되었다. 내일은 푹 쉬자고 마음먹고 침대에 누워 습관처럼 핸드폰을 열었다. 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일찍 말해주고 싶었는데, 나 에이즈 양성 판정을 받았어. 근데 지금은 심각하지 않아. 며칠 전에 병원에서 그러는데 수치가 상당히 낮아졌다고 그러더라고.”


당황스러움에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나에게 정확한 상황 파악이 되는데 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우리가 샤워실 안에서 했던 체위들을 하나씩 상상하며 어떤 위험한 행동을 했는지 내 입 안에 상처가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에이즈는 침으로 전염되는 게 아니니 나눠 핀 담배는 괜찮을 거라고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다행히 우린 섹스를 하지도 않았다. 애무를 해준 정도로 마무리돼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당혹스러움이 진정된 뒤에는 비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미리 이야기하지 않은 그가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만약 그가 적극적으로 삽입을 하려고 했다면 나는 마지못해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것이다. 삶의 비극을 안겨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자 그의 무책임함에 분노를 느끼기도 했다.


이후에 나는 원나잇이 불러일으킬 재앙의 가능성을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검사를 받았다. 폭풍이 부는 언덕 끝에 서있는 기분으로 결과를 기다렸고, 음성이 나온 뒤에야 안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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