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성의 괴로움
"세상에 고양이가 사라지면, 내가 사라지면 날 위해 슬퍼해줄 사람이 있을까?" 주인공은 말한다. "내가 죽는 다면 세상이 변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와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조금의 변화는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바란다.
일본 영화 ‘세상에 고양이가 사라진다면’의 내용은 주인공은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가 등장해 소중한 것을 하나 지우는 대가로 하루를 더 살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전화, 영화, 시계, 고양이를 자기 마음대로 없애겠다고 하고 그것과 관련된 인연들과 사건들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주인공은 고양이만은 없앨 수 없다고 한다. 그는 의문의 존재가 사실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기 자신임을 인지하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주인공은 일상에서 안락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다 우연히 찾아온 자신의 죽음은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다. 누가 쉽게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주인공은 절망과 억울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우연으로 이뤄진다. 잘못 걸려온 전화로 전 여자 친구를 우연히 만난 일, 우연한 계기로 영화광인 친구를 사귀고, 우연한 사건으로 해외여행 중에 만난 친구를 잃는다. 우연은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우리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이것에 분개하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그것은 그냥 일어난다. 그리고 우린 어쨋튼 감내해야 하고 그렇게 견디고 살아가야 한다.
주인공은 전화, 영화, 시계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저항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우연한 만남일 뿐이다. 하지만 고양이는 예외이다. 고양이와의 기억은 부모님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 엄마가 주인공에게 하는 대사가 있다. “사람이 고양이를 기르는 게 아니야, 고양이가 사람 곁에 있어 주는 거야.” 이 말은 고양이가 주인공 가족을 간택했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어릴 적에 주워 온 '양상추'(양상추 상자에 버려져서 양상추라 부른다)이 입양되고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다 생을 마감한다. 쓸쓸한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는 몰래 유기묘를 입양하여 양배추 상자에 담아 데리고 오게 되고 이 고양이 이름은 '양배추'가 된다.
이렇게 고양이에겐 우연성과 의도성이 함께 존재한다. 양상추는 우연히 주워왔고 양배추는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데리고 온 것이니까. 이것은 부부 사이에 탄생하는 아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신생아인 주인공을 들고 있을 때, 아버지는 아이를 보고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이 아이가 자신들을 선택한 것이고 그것에 감사함을 신생아에게 표현하는 것이다. 우연히 만난 두 부부가 의도하여 사랑의 결실로 탄생한 것이 아이이니까 말이다. 고양이는 곧 이 세상에 탄생하는 아이들을 상징하고 곧 주인공 자신도 상징하기 때문에 고양이의 존재를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왜 하필 고양이일까 생각해봤다. 고양이는 현재를 살아가는 동물로써 문학에선 많이 묘사된다. 또한 우리가 고양이를 떠올리면 따스한 햇빛 아래 가만히 일광욕을 하기도 하고, 강아지처럼 사람의 관심에 집착하지 않으며 독립적인 동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날의 하루를 여유롭게 즐기는 것이 고양이의 특징일 것이다. 작품은 우리가 오늘 하루를 대하는 데 있어서 여유롭게 충분히 만킥하며 살라는 메시지를 고양이를 통해 전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감독은 삶의 우연성이 어쩔 땐 잔인하게 어쩔 땐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고 죽음이란 것 또한 그렇다. 이런 것은 갑자기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그렇다면 우린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질문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주인공의 답은 그것이 그냥 삶임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삶은 수많은 우연으로 가득 차있으나 그중에선 우연을 가장하여 우리를 찾아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며 살고, 나의 존재가 사라진다면 나를 위해 슬퍼해줄 사람 혹은 세상은 변하지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지기보다 나의 존재가 없음으로 인해 세상은 분명 조금이라도 변할 것이고 누군가는 날 위해 슬프 할 것이라도 스스로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영화는 마무리 짓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