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생존하는 방식.
나는 길강아지라는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길고양이들은 자주 듣는다. 그리고 이들은 내 주변에 항상 존재하고 있다. 내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에도 길고양이를 위한 공간과 사료가 가득 있는 그릇이 놓여있다. 이렇게 사람 손을 탄 고양이들은 친근하게 먼저 다가오기도 하지만 나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심드렁하게 햇살을 즐기고 있기도 하다. 언제부터 길고양이들이 내 주변에 이렇게나 많아진 걸까?
요즘 캣맘이라는 키워드로 세간은 시끄러웠다. 이 분들은 일정 구역에서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고 책임비용이라는 명목으로 분양비를 받는 분이라고 한다. 그분들은 그 분양비로 다른 길고양이들에게 줄 사료를 산다고 하는데, 언뜻 보면 버려진 고양이들을 관리해주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주는 좋은 일을 하는 듯 보인다. 그들의 행동이 이해는 간다.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양이는 야생에서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길거리에서 태어난 고양이보다 적다는 걸 알고 있고, 그들이 버려졌다면 새로운 입양자가 나타날 때까지 돌봐주는 것이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가정집에서 버려진 고양이가 아닌 그 자체로 야생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양이라면? 야생에서 생활했던 고양이를 억지로 입양 보내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궁금하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구출’이 아니라 ‘납치’가 되는 셈 아닐까?
내가 다니는 대학교 캠퍼스 안에는 길고양이들이 엄청 많다. 단순히 개체수의 보존을 위한 생존을 넘어서서 번식하여 세력을 확장하고 있어 보인다. 몇 년 사이에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났음은 틀림없다. 나는 이 고양이들이 살기에 학교만한 곳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둥지를 막 떠나서 자취를 하고, 털이 있는 생명체에 대한 그리움이 있으나 그렇다고 고양이나 강아지를 입양하는 것은 금전적으로 힘든 데다 책임감까지 떠안는 것은 부담이 될 터이다. 하지만 길고양이에겐 그런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이들은 영역 동물이고 인간의 거주구역 근처에서 서식한다. 몇 번 특정 시간에 사료나 간식을 주기 시작하면, 그걸 기억하고 근처에서 어슬렁거릴 것이다. 강아지처럼 방정맞게 뛰어다니며 기쁨을 표시하기보단 사람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뺄 줄도 아는 매력은 그들의 생존력에 플러스 효과를 주는 것은 아닐까.
내가 찍은 사진의 이 고양이들은 무늬가 비슷한 걸로 보아 가족인 듯하다. 집 근처 카페에서 살고 있는데, 어미가 새끼를 낳아 쭉 생활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지나가도 눈길 하나 주지 않고 그냥 저렇게 앉아 있는다. 게다가 여중과 여고가 근처에 있다 보니 여학생들을 유혹하는 미끼로 톡톡히 사료값을 해내고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고양이들은 우리 주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살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빠르게 익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