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비극 드라마.
나는 현재 아일랜드인과 연애를 하고 있다. 총 여섯 명의 형제가 있으며 알코올 중독에 걸린 형, 가족들과는 거의 인연을 끊고 지내는 둘째, 투덜대는 셋째 누나와 돈은 많지만 미혼인 넷째, 두 명의 자녀를 둔 싱글맘 누나와 나의 애인(막내)이 한 가족이다.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욕하면서도 금방 웃고 떠드는 이들을 보면 외동으로 자라온 내가 느끼지 못했던 어떤 가족 간의 정이란 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일랜드 가족들은 자녀를 굉장히 많이 두는데, 애인의 말로는 “셋이나 넷이나 똑같고, 넷이나 다섯이나 같잖아.”라고 말한다. 아이는 보통 가족 전체가 돌아가면서 보기 때문에 (엄마 혼자 독박 육아를 하지 않는다. 심지어 형과 누나가 갓난아이를 돌보기도 한다고 한다.) 엄마 입장에선 별로 다를 게 없다고 한다. 나로선 이해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키우기 어려운 세상 아닌가.
내가 소개하고자 하는 이번 작품은 아일랜드의 어두운 과거와 가족과의 애끓는 애정과 증오심 그리고 비극을 다룬 연극이다. 리논의 뷰티퀸(The Beauty Queen of Leenane)은 한국 무대 위에 올라간 작품은 아니다. 영국과 아일랜드에 선풍적인 드라마 인기를 얻었으며, 셰익스피어 이후에 아일랜드와 영국이 낳은 최고의 극작가라는 극찬까지 받은 마틴(Martin McDonagh)의 작품이다. 연극계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둔 뒤, 현재는 영화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대본이 없어서 줄거리를 조금 길게 설명하려고 한다. 소재와 사건들이 굉장히 극적이며 끔찍하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으리라 생각이 든다. 극의 구성은 총 9장으로 되어있다.
#1. 아일랜드의 서쪽 끝, 코네마라(Connmara)의 아주 작은 마을 리논(Leenane)에는 딸 모린 폴란과 엄마 매기 폴란이 지저분하고 작은 집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사건이 이뤄지는 배경은 부엌과 거실이다. 부엌 벽에는 ‘악마가 당신의 죽음 깨닫기 전까지만 넌 천국에 있을 것이다.’라고 프린트된 수건이 걸려있다. 매기는 70세의 노인이고 오른손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상태이다. 식료품 심부름을 하고 방금 돌아온 딸 모린에게 매기는 수발을 요구한다. 매기는 혼자 할 수 있음에도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는 듯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딸에게 이것저것 시킨다. 모린은 30대가 되어서도 결혼도 못하고 시골 촌구석에서 엄마랑 같이 있다는데 환멸을 느끼며 엄마에게 화를 퍼붓는다.
#2. 레이먼드는 십 대 소년으로 형의 심부름 때문에 매기 집에 방문한다. 그의 형 파토는 영국에서 이민자 생활을 하고 가끔 집에 방문하여 파티를 여는데, 그것의 초대장이었다. 하지만 모린은 집에 없었고 매기는 그녀가 곧 돌아올 거라는 말만 하고 TV에 집중한다. 지루함을 참지 못한 레이먼드는 매기에게 편지를 남기고 돌아간다. 모린이 돌아오지만 매기는 파티의 초대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매기는 딸 모린이 파티에서 남자를 만나 자기를 떠날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딸에게 초대장 이야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레이먼드를 밖에서 만난 모린은 엄마를 심문하여 초대장을 받아낸다. 그리고 그녀는 파티로 향한다.
#3,4. 모린은 파토와 함께 파티에서 돌아온다. 부엌에서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고 모린의 방에서 같이 잠을 잔다. 다음날 아침, 먼저 일어난 파토는 거실에서 매기를 마주친다. 매기는 죽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고, 모린이 자신의 오른손을 어떤 방식으로 고문해서 이런 큰 화상을 입게 되었는지 그리고 과거에 모린이 정신병원에 입원한 이력에 대해서 서슴없이 내뱉는다. 모린은 파토에게 이를 설명한다. 그녀는 일자리가 없는 아일랜드를 떠나 영국에서 일을 했는데, 심각한 여성비하와 인종차별로 극심한 우울증을 겪었고 결국 정신 병원에 가야 할 정도였다고 말한다. 이에 파토는 자신도 똑같은 처지라며 그녀를 이해해준다. 과거의 아픔을 엄마 때문에 어쩔 수없이 설명해야 했던 모린은 극도로 예민해진 상태에서 파토의 작은 친절에도 모질게 쏘아붙이며 그를 시험한다. 파투는 영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나중에 꼭 편지를 보내겠노라고 약속하고 떠난다. 하지만 매기는 파토가 절대 편지를 보내지 않을 거라며 포기하라고 말하고, 비참한 기분의 모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5,6.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나고 모린이 파토를 잊을만할 때쯤, 레이먼드가 편지를 들고 등장한다. 아쉽게도 모린은 밖에 일을 보러 나간 상태라 다시 매기와 단 둘이 있어야 했다. 이에 당황한 매기는 자신에게 편지를 주면 꼭 전달해 주겠다고 하지만, 형이 몇 번이고 모린의 손에 직접 이 편지를 전달하라는 당부를 되뇌며 기다리겠다고 한다. 모린은 도착하지 않고 레이먼드는 약속에 늦을 거라며 초조해한다. 결국 찬장에 편지를 올려놓고 매기에게 절대 손대지 말라고 말한다. 매기는 하늘에 맹세하며 걱정 말라고 한다. 레이먼드가 퇴장하자마자 편지를 읽는다. 파토는 미국에 일자리를 잡아서 떠날 거라고 하고, 모린에게 같이 가자고 요청한다.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좋은 요양원으로 보내면 될 거라고 말한다. 매기는 편지를 태운다.
#7,8. 모린과 매기는 일상을 다시 살아간다. 기분이 좋은 모린은 매기를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생선 튀김을 만들어주기 위해 기름을 끓이고 있다. 기분이 좋아진 매기는 무의식적으로 파토가 편지에 언급한 그들만의 비밀을 이야기한다. 모린은 매기에게 자신과 파토가 그날 밤 얼마나 열정적인 섹스를 했는지 자랑하지만 매기는 거짓말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것은 모린과 파토만이 아는 일인데 매기가 알고 있는 것에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매기는 시치미를 떼지만 모린은 끓은 기름을 가지고 와서 그녀는 묶고서 손에 조금씩 붓는다. 매기는 결국 편지의 내용을 전부 이야기한다. 모린은 파토와의 미국 이민을 꿈꾸며, 그날 밤 파토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검은 드레스를 차려입고 외출한다. 밤늦게 그녀는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파토와의 재회와 결혼생활 그리고 지긋지긋한 아일랜드와의 이별을 매기에게 이야기해 준다. 그러다 매기의 머리가 몸통에서 떨어져 바닥에 굴러 다니고 무대는 암전된다.
#9. 매그의 장례식이 끝나고 모두가 떠난 집에 레이먼드나 남아서 모린을 위로한다. 모린을 파토와 미국으로 향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데, 레이먼드는 이를 이상하게 여긴다. 그리고 그날 파티에서 일어난 사실을 모린에게 말해준다. 파토가 파티를 연 이유는 다른 여인과 결혼을 축하하는 파티였고,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가족들과 친구들을 마지막으로 보기 위한 파티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전에 엄마가 자주 사용하던 흔들의자에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레이먼드에게 ‘리넨의 뷰티퀸이 작별 인사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해달라고 부탁하고 레이먼드가 나간 뒤, 자신도 짐을 챙겨 어디론가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