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마 제이슨은 어떻게 탄생하였는가.
고딕 장르는 시대가 지나면서 다양한 공포/호러 장르와 만나 변형돼 왔고, 각 시대와 나라 내의 어두운 면을 투영하고 있다. 과거 고딕 문학은 평온한 마을(내부)의 균열을 일으키는 마녀와 드라큘라 같은 숲 속(외부)의 괴물을 묘사하여 권력을 가지거나 습득한 지식을 가진 특정 계급에 대한 불안을 반영하였다. 계급사회에선 아무 힘이 서민들은 이런 삐뚤어지고 비범한 인물들을 악으로 상정하고 공포의 대상으로 봤던 것이다.
고딕 장르는 현대 영화와 만나서 자극적인 영상을 관객에게 전달하여 그 공포감을 극대화한다. 그래도 여전히 고딕 장르로서 가지고 있는 사회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사람들은 무의식 중에 보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이나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을 가장 공포스럽고 상징적인 형식의 전달에 끌리게 되는 것이다. 13일의 금요일의 제이슨(Jason Voorhees)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하키 마스크에 마체테를 들고 무덤덤하게 사람들을 죽여나가는 이 연쇄 살인마의 탄생과정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는 선천적인 기형아로 태어났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마들의 어린 시절이 그렇듯, 부모의 별난 집착 혹은 무관심 속에서 자라는데 제이슨은 전자의 가정 형태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얼굴이 심각하게 변형된 장애인으로 태어난 제이슨과 파멜라의 아들에 대한 심각한 집착은 엘리아스(남편)를 떠나게 만든다. 이는 자신이 가족을 해체시킨 원인이라 생각하게 되고 자기혐오적인 태도를 지니게 만든다. 싱글맘이자 장애인 아들을 키우는 파멜라는 사회에 기대지 못하고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다. 이 둘은 결국 외부세계를 회피하고 내부의 결속력을 더욱 단단하게 다지는 쪽으로 이어가게 된다.
제이슨은 타인들로부터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혐오의 대상이 됐다. 그 원인은 단지 정상적으로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억울하게 보인다. 그는 문제의 장소인 크리스털 캠핑장 근처 강에서 익사하여 죽게 되는데, 캠핑장의 관리인들의 근무태만이 그 문제의 원이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이걸 사고사로 덮어 버린다. 파멜라는 부정의함에 시위하고 정의를 호소하지만 싱글맘인 그녀에겐 차가운 현실만을 깨닫게 할 뿐이었다. 이에 그녀는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기로 하지만 결국 목이 잘려 죽음을 맞는다. 이 결과, 제이슨은 연쇄살인마가 되어 죽음으로부터 되돌아오면서 영화의 시리즈를 이어나가게 된다.
소수자에 대한 사회의 불공평함이 결국 제이슨이라는 희대의 살인귀를 탄생시킨 셈이다. 자신의 흉측한 얼굴을 가리기 위한 하키 마스크는 희생자들의 절규에 동정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거대한 칼을 휘둘러 죽인다. 이것은 자신이 익사하기 전 살려달라는 외침과 파멜라의 정의에 대한 요구에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은 사회에 대한 미러링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오늘날에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사회적인 이슈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주변에서 싱글맘이나 장애인을 자주 만나보지 못했다. 주변에 그분들이 많이 없기 때문에 내 눈에 안 보이는 게 아니라고 장담한다. 그분들은 숨겨져야 하고 부끄러워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마치 나는 게이인데, 내 친구들이 자신의 주변엔 성소수자가 하나도 없다고 굳게 믿는 것처럼 말이다. 사회적인 인식은 그것을 당당하게 드러내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동정해야 하는 것이고 슬픈 일이며, 슬픈 일들은 되도록 집안에 숨겨놓고 아닌 척해야 하는 걸로 만든다. 이러한 사회의 그림자 속에 제이슨과 같은 살인마는 비틀어진 욕망을 가진 채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공포 장르는 바로 이러한 사회비판적 메시지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장르이다. 인기 있는 공포영화가 있다면 그것을 한번 자세히 들춰봐야 할 것이다. 그 안에 우리가 무엇을 회피하려고 했는지, 무엇으로 부터 외면하는지를 반영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