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이성애.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이성애를 의심하거나 이성애가 자연적인 현상임을 증명하려는 연구는 없었다. 우린 이성애의 합리성을 의심하지 않고 당연하게 정상성을 인정하고 있고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라 생각한다. 이 생각은 동성애는 이성애로부터 파생되었고, 이성애의 미성숙한 형태로 바라보고 있다. 마치 20대에서 60대의 성인이 완전한 상태이고 아이들은 미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권리를 줄 필요가 없다는 생각과 같다. 하지만 19세기 동성애자가 이성애의 파생이 아닌 하나의 정체성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동성애와 이성애는 서로를 설명하기 위해 존재해야 하는 쌍둥이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그러면서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동성애도 자연스러운 범주로 편입하게 되었는데, 이제 현대의 동성애/이성애는 자신의 자아와 정체성(Identity)을 인식하는 도구로 자연스러운 현상인 성(Sexuality)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현재도) 에이즈 논쟁은 그런 편견에서 생겨났는데, 정치권에선 성 정체성(특히 게이)을 가진 사람들에게 걸리는 병이라고 손가락질하였다. 당대 사회의 이런 식의 차별에 맞선 동성애 활동가들은 성 정체성의 문제가 아닌 (모든 인간의) 과한 성행위, 매춘과 주삿바늘 하나로 여럿이 사용하는 행위로 인한 전염이 문제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은 성 정체성과 성행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보건당국은 누구를 교육할 것이냐에 많은 혼란이 생겼다. 그들이 혼란에 빠진 점은 이 둘에 다 포함되는 사람과 포함되지 않는 사람들 혹은 가끔 남성과 관계를 맺는 자신은 이성애자라고 분류하는 남성들 같은 사람들을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에 명확한 구분을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진정한 동성애/이성애는 이것이다’라고 명확한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게이(Gay)라는 단어가 동성애자를 대표하는 단어로 탈바꿈한 것은 동성애가 이성애로부터 파생된 미성숙하다는 인식을 탈피하기 위한 정치적 대응이라고 말한다. Gay라는 본래 ‘쾌활한’, ‘마음 편한’, ‘생기에 가득 차 발랄한’이란 뜻을 가진 기존의 단어를 ‘동성애자’가 역사적으로 담고 있던 병리적이고 의료적인 이미지를 완전히 바꾸기 위해 사용했고, 그것은 성공적이었다는 의견이 다분하다.
퀴어(Queer)는 미국에서 동성애자를 모욕하는 속어로 사용된 단어이다. 뜻은 ‘이상한’, ‘색다른’으로 이성애를 정상적인 범주로 상정하고 그 외의 ‘이상한’ 성소수자들을 향한 비난이 섞인 명칭이었지만, 성소수자들은 그 단어를 채택함으로써 자신의 존재감을 당당히 내세웠다. 또한, 현대에서 널리 사용되는 ‘퀴어’는 내 성 정체성이 사회와 타인으로부터 정해지길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정의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기도 한 단어이다.
작가 애너매리 야고스(Anamarie Jagose)는 이 용어들은 소급적이고 초역사적인 설명어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그리고 특정하게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의 문화적 형성물들을 지시하는 용어로써 가장 흔히 쓰여왔다고 말했다. 또 제프리 윜스(Jeffrey Weeks)는 “이 용어들이 ‘오래된 현실에 대한 그저 새로운 이름표가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현실을 가리킨다. 적대적인 사회가 동성애에 꼬리표를 붙이는 방식에서, 그리고 낙인찍힌 이들이 스스로를 보는 방식에서의 변화한 말이다’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