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세계란?
이야기의 시작은 싱클레어의 회상에서 시작한다. 그가 처음으로 사회에 나가게 된 나이 10살, 그는 프란츠 크로머라는 나쁜 아이들 패거리와 어울리게 된다. 아버지의 보호 아래 가부장제의 질서 속에서 수동적으로 행동했던 주인공은 또래 집단에서 힘을 가진 크로머에게 잘 보이려고 과수원에서 사과를 잔뜩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다. 그 세계에선 악한 짓을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란츠는 그의 거짓말을 미끼 삼아 그에게 돈을 갈취하려고 하고, 싱클레어는 그에게 끌려다닌다. 이것은 아버지(남성)라는 질서와 선이 가득한 세계와 또 다른 남성의 악의 세계의 충돌이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한 짓을 사실대로 말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세계에선 그는 선한 일을 행해야만 하는 사람이고, 엇나가는 일은 곧 추방이라는 판결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이렇게 고통받는 것이 곧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아버지를 증오하게 된다.
집 안에서 그의 역할을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아버지가 요구하는 규칙을 지키며 여성인 누나를 보호하는 일이다. 그것이 10살인 그가 해야 하는 역할이다. 프란츠가 자신의 누나와 데이트를 하고 싶다는 요구를 했을 때, 돈과 먹을 것을 주면 줬지 누나는 안된다고 말뚝을 박는다. 그는 아버지로 상징되는 신의 아들인 아벨이라고 보인다. 아니, 그는 자신이 자신의 형제를 죽인 카인이 되면 안 되기 때문에 아벨이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순종적이고 신의 뜻에 복종하는 아벨이고 싶어 한다.
가부장제 시스템이 유지되는 최소한의 단위는 가정이다. 아버지(남성)의 아래 질서를 교육받고, 사회에 나가서 다른 남성(크로머)에게 복종하며 남성에 의해서 설계된 학교 시스템 안에서 교육받는다. 그곳에선 ‘남성’이란 어떤 역할이며 어떻게 사회에 이바지해야 하는지 교육받는다. 그리고 무엇이 ‘금지된 세계’ 인지도 함께 교육받는다. 싱클레어의 마음 깊숙한 곳 안에는 이것을 깨려는 욕망이 존재하는데, 크로머에게 ‘사과를 훔쳤어’라는 거짓말에서 드러난다. 싱클레어는 실제로 사과를 훔치지 않았다.
사과는 선악과를 암시한다. 그는 세상의 정해진 규칙들과 입력받은 역할에 대한 회의감이 마음속 깊숙이 있으며 그것을 욕망하고 충동적인 거짓말과 함께 나온 것이다. 그것은 크로머라는 다른 남성에게 인정받기 위한 꾸며낸 이야기였으므로 아버지의 세계에 저항의 의미로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싱클레어는 주체적인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보다 어떤 남성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위와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수동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이후에 등장하는 교회의 오르간 연주자 피스토리우스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여전히 아버지의 집에서 살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개성의 경계를 늘 너무나도 좁게 긋고 있어! 우리는 늘, 우리가 개인적이라고 구분해 놓은 것, 상이하다고 인식하는 것만 개성이라고 생각해. 그러나 우리는 세계의 총제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 하나하나가 말이야.” (142)
그의 세계는 굉장히 이상적이고 전체주의적 세계이다. 개성이 없다는 것은 주체적으로 독립하지 못하였고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아버지의 세계의 일부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것은 신으로의 (아버지 세계의) 찬양을 하는 사람으로 남아있다. 그의 공간에는 아버지의 책으로 가득 둘러싸여 있고, 개인적인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를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동시에 존경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에게서 들은 ‘압락서스’라는 단어를 피스토리우스에게 말하는데 그는 상당히 불쾌해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압락사스."
아버지의 세계는 이분법적인 세계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선과 악으로 규정된다. 그리고 권력이 없는 사람들은, 정치인이든 종교인이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의 규정에 맞춰 교육받는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어버린다. 크로머의 세계는 절대 악이 존재하고 선은 증오하는 세계이다. 피스토리우스의 세계는 절대 선만이 존재하고 악을 증오하는 세계이다. 이러한 한 세계에서만 살게 되면 우린 알껍질 안에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더욱 넓은 세상이 있지만 껍질 속의 포근하고 익숙한 공간만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간다.
압락사스는 모두를 가진 존재이다.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하고, 질서 정연하면서 혼돈이 존재하는 악마이자 천사이다. 완벽한 균형을 이룬 존재이고 각각의 세계에 발을 담그고 있는 자이기에 선의 세계에서 사는 피스토리우스는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라며 화를 내게 만드는 것이다.
선과 악으로 분리된 세계의 끝은 누구 하나가 종말해야 하는 세계이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