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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Apr 19. 2022

70. 혐오표현도 자유일까?

고장 난 노트북을 수리하러 다녀오는 길가에 현수막이 두 개가 걸려있는 것을 봤다. 내용은 ‘남자 며느리, 여자 사위’를 집으로 들이라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와 그 옆엔 ‘동성가족 교육을 반대할 자유를 뺏기 말라.’ 대략 이런 식의 내용들이었다. 한 번도 저런 혐오성 발언의 현수막을 본 적이 없어서 당황했지만, 이 현수막이 어떤 단체에서 만들었는지 혹은 시청에 허락을 받았는지(받은 현수막은 옆에 도장이 찍혀있다.) 살폈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다가올 지방선거로 인한 한 세력의 정치 선거용 현수막일까? 아니면 어떤 교회단체가 달아 놓은 것일까? 문득 든 생각은 ‘우리에게 정말 누군가를 혐오할 자유가 있는가?’였다. 


홍성수 작가의 저서 ‘말이 칼이 될 때’에서 ‘혐오표현’에 대해 간단히 정의하였다. 

“성별, 장애, 종교, 나이, 출신지역, 인종,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어떤 개인/집단에게 모욕, 비하, 멸시, 위협 또는 차별, 폭력의 선전과 선동을 함으로써 차별을 정당화, 조장,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 표현”이라고 한다. 


이것은 단순히 “난 네가 싫어.”라고 하는 표현은 비난이지만, “여성들을 너무 감정적이라 같이 일하는 게 피곤해.”, “외국인들은 문란하고 멍청해.”라는 발언은 혐오표현이 된다. 이 말들은 단순히 비난에서 그치지 않고 한 (소수자) 집단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투영하게 하며 그들의 지위 자체를 끌어내린다. 그러한 표현 뒤에 숨어있는 것은 소수자가 ‘열등하다’는 인식이 기반이 된다. 


이런 의식은 상당히 무서운 결과를 낳기도 한다. 최근에 큰 이슈로 자리매김했던 ‘강남역 살인사건’은 여성 혐오이냐 아니냐로 시끄러웠다. 그는 “여성들이 나를 무시해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신체적으로 유리한 조건의 남성이 여성을 대상으로 묻지 마 살인을 한 것으로 인해 여성들이 평상시에 가지고 있던 불안감이 폭발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건은 혐오표현에서 혐오 행동으로 발현된 가슴 아픈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는 모두에게 동등하게 있어야 함은 맞다. 하지만 다수자로서 소수자에게 혹은 권력이 있는 사람이 힘이 없는 약자에게 행하는 것은 소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일이기 때문에 민주사회의 구현을 해치는 일이 된다. 


 그렇다고 다수자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할까? 그것은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여성할당제와 같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동등하게 만들기 위해서 약자에게 무게를 조금 더 실어야 하는 법과 제도가 마련돼야 함은 당연하다. 나는 동시에 차별과 혐오에 대한 문제 인식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악플을 달지 못하게 막는 것이 아닌 악플을 다는 행위는 잘못된 행위이고 큰 책임이 뒤따를 수 있다는 인식으로 변화하는 것이 느리지만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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