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을 통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1인 2역을 잘 소화한 배우들의 열연에 포커싱을 맞춰 광고를 하곤 한다. 잘생기고 아름다운 배우들이 인터뷰에 나와서 배역 2개를 소화하는데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며, 정작 중요한 감독의 의도는 한 발짝 물러나 있음은 분명하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감정이입을 하고 싶은 관객에게 솔직히 감독의 심오한 의도 같은 것보단 이상형 같은 배우들이 나와서 말 한마디 해주는 것이 홍보효과면에서는 더 효과적 이리라.
감독은 어째서 한 배우를 데리고 두 개의 역을 맡게 하는 걸까? 출연료 절감이 그 목적일까? 하지만 대부분 1인 2역을 하는 배우들은 인지도가 일단 있는 분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시간과 노력이 더 들어가면 갈수록 출연료는 높아질게 분명하다. 물론 연기파이면서 신입 배우가 그 역할을 맡는다면 절감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제작하는 비용은 그렇게 만만치 않을 것이며 영화를 성공하는 방향으로 최대한 이끌어야 하는 감독에 입장에서 신입배우 캐스팅은 상당한 리스트를 짊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절감이라기보다 오히려 감독이 자신의 영화예술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렇게 했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명작으로 꼽히며 한국에서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지킬박사와 하이드'는 1인 2역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윤리적인 문제로 다른 인간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할 수 없었던 지킬박사는 자신의 몸을 대상으로 실험을 이어나간다. 약물을 투약하면서 점점 그는 한순간 다른 인물로 변하는 부작용에 시달린다. 그의 연구내용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던 아버지를 위해 인간의 본성을 나누고 '악'을 제거하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자신을 '하이드'라고 부르는 지킬의 내면의 악을 깨우고 만다.
이 작품에서의 1인 2역은 한 인간 안에 숨겨진 '선과 악'을 의미한다. 한 인간 안에는 두 가지의 인격이 존재하는데, 사회에서 남들과 잘 살기 위해 교육받고 양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선'과 반대로 나의 목표대로 방해물을 없애려 하며 반사회적 기질을 '악'이 그것이다. 한 배우가 이 두 가지를 표현함으로써 나타낼 수 있는 것은 한 인간 속의 두 가지 본성이다. 살다 보면 나에게 정말 의리 있고 정직한 줄로만 알았던 친구가 어느 날 나에 대해서 나쁜 말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처럼 우리는 상대를 다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우리도 가끔 사소한 이득 앞에서 배신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못 이길 때도 많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 '도가니'에선 청각장애인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쌍둥이 역으로 장광 배우님이 연기하셨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와는 달리 실질적으로 두 명이 존재하지만 한 배우가 연기함으로 착하고 순하게 나오는 행정실장과 착하지만 뒤에서 아이들을 성폭행하는 교장의 모습을 보면서 관객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감정의 혼란을 야기한다. 이것에서 감독이 의도한 것은 우리 안에 상냥하고 웃고 있는 인물이 사실은 잔혹한 강간범 혹은 살인범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한국에서도 정말 유명한 작품 '러브레터'는 두 명의 여자 주인공이 나카야마 미호 한 명이다. 여기에선 '선과 악'의 구도로 이 두 캐릭터를 보기보단 '삶과 죽음'의 구도로 조금은 독특하게 짜여 있다. 주인공은 산악사고로 죽은 애인 후지이 이츠키를 잊지 못해 그의 중학교 시절 주소에 편지를 써 보내는 히로코가 뜻밖에 답장을 받으며 시작한다. 보낸 이는 공교롭게도 죽은 애인과 똑같은 이름을 지닌 여자 후지이 이츠키였다. 히로코는 삶을 상징하며 애인의 죽음에 아직도 감정이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보낸 편지는 죽음을 상징하는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간 것이다. 영화에선 이런 구도는 계속 나타난다. 삶은 언제나 죽음을 향해 가고 있기 때문에 그쪽을 바라보며 항상 먼저 알아챈다. 영화에서 히로코가 후지이를 먼저 알아채거나 먼저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이 말이다. 하지만 이 두 캐릭터는 한 배우가 연기한다. 이것으로 감독은 인간의 삶 안에는 삶과 죽음이 항상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