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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성 Apr 28. 2022

79. [분석] 닥터 파우스터스(1)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집단 속 개인의 욕망.

 

 닥터 파우스터스(Doctor Faustus)는 이미 국내에서도 많이 알려진 드라마 중의 하나이다. 간단히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독일의 저명한 학자 파우스터스 박사는 인간이 탐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과학을 탐구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느낀다. 그래서 그는 신의 영역에 눈길을 주게 되며 어두운 숲으로 들어가 주문을 외워 메피스토펠레스라는 악마를 불러낸다. 메피스토는 24년간 박사의 시중을 들며 그가 원하는 어떠한 지식이나 요구에 순응하겠다는 조건을 걸고 이후 그는 박사의 영혼을 마왕 루시퍼에게 가져가겠다는 계약을 요구하고 파우스터스는 고민 끝에 승낙한다. 

 그때부터 박사는 세상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수많은 지식들을 얻었으며 여러 나라의 궁전에 초대되고 아름다운 여인 헬렌을 만나 쾌락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 계약 기간이 되자 박사는 절망과 후회의 독백을 하고 죽는다. 



 크리스토퍼 말로우(Christopher Marlowe)의 작품 '닥터 파우스터스'는 작품 자체와 해석 그리고 원작(The Historia von D. John Fausten)에 대한 논란이 상당했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말로우는 1589년에 발행된 독일 원작의 기존 구성에 디테일을 더하여 작품의 깊이만을 더했을 뿐 의도적으로 집어넣은 요소는 없다고 한다. 오컬트적 요소와 민화 그리고 금지된 지식과 같은 흥미로운 요소들을 담고 있던 이 작품으로 유럽 전역에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그러다 P.F라고 불리지만 정확한 개인정보가 없는 번역자가 영어로 옮기면서 많은 부분의 오역을 남기며 작품의 방향을 바뀌었다.


 닥터 파우스터스가 쓰인 시기는 1588에서 1589년도 초이다. 1520년대에서 1620년대까지 지속했던 영국의 르네상스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인쇄술과 문학 등, 많은 예술 장르들이 꽃을 피운 시기이고, 종교계에서도 국가의 근간을 흔들만한 사건들도 많았던 시기임이 분명하다. 필자는 르네상스 시대의 종교의 혁신적인 변화(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가 사회의 구성원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집단의 일원이던 닥터 파우스터스가 개인의 욕망을 이루기 위하여 집단에서 분리되어 나오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사회적인 분위기는 “국가와 세상의 문제들은 객관적으로 사고하여 처리하고 동시에 주관적인 면도 강조하였으며, 사람은 영적인 개인이 되었고, 자신도 개인으로 인식하였다.” 이렇듯 중세시대는 집단을 중시하는 시대였다면 르네상스에 근본적인 정신과 토대는 개인을 보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현상은 봉건주의가 붕괴하고 도시국가들의 탄생으로 해상무역이 발달로 상업 중심도시가 된 제노바와 베네치아를 예로 들 수 있다. 이런 움직임은 기존 계급사회의 근간을 흔들게 되고 사람들은 계급사회 밖으로 나오려는 시도를 하며 자신이 물려받은 계급에 머물러있지 않고 개인의 개성을 강조하고 구조 밖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면서 상인들이 부를 축적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부르주아 계층을 탄생시킨다.


 서구 중세사회에서 교회가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날수록 부패는 예상된 결과였다. 국가는 교황의 입김으로 운영이 되었고 중심이 흔들렸으며, 대중의 무지함을 이용하여 권력을 휘둘러 세금을 거두기 바빴다. 이런 와중에 로마 황제가 당시 핍박을 받는 교회를 국교로 인정하면서 문제는 심각해졌다. 국가정치와 권력의 팽창을 교회란 종교기관을 등에 업고 황제 중심 중앙집권적 통합을 시도하였고, 황제는 국가와 교회의 수장이 된 것이다. 이렇게 종교는 그리스도 중심에서 벗어나면서 면죄부가 생겨난다. 중세 가톨릭에 따르면 성자들은 죄를 짓지 않고 많은 선행을 하지만,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평소에 수많은 죄를 짓고 살기에 죽음 후에는 형벌이 따른다고 교회가 주장한다. 죽은 친척이나 친구들의 형벌을 면죄하기 위해 면죄부를 돈으로 교회에서 사거나 미사를 참석해야 했다. 오직 교황만이 신의 권능을 가질 수 있으며 성인들의 공덕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면죄부 판매 허용권을 가지게 됐다. 즉 국가와 종교 내의 최고 권력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Demi-God으로 하여 다른 공동체와 자신을 분리한 것이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으며 그중 두 명의 신학자의 주장이 눈길을 끌었다. 


 에라스무스는 인간의 의지는 타락했으나 파괴되지 않았으며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있기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각자의 의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자유의지론’을 내세웠다. 이것은 인간의 예술적, 학문적, 윤리적 성취는 곧 자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고 자유의지에는 그만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주장인 것이다. 


 마틴 루터의 ‘노예 의지론’은 인간의 탄생에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성령의 의지이고 타락을 한다면 악령의 노예이며 원죄를 가진 자연인은 불신앙이며 자연인으로서의 타락은 악마의 노예이다. 구원의 은혜를 받는다 하여도 다시 성령이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인간의 의지는 절대 주체적일 수 없으며 누군가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말한다. 그러면서 신이 선악과를 만든 이유와 그것을 얻기 쉬운 곳에 둔 이유는 곧 인간은 신의 계획대로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에라스무스는 그의 노예 의지론을 반박했는데 이유는 만약 인간이 이러나저러나 노예상태로 남아있을 존재라면 인간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행을 이루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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