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혜성 May 01. 2022

81. [에세이] 우울증에 걸린 사람 이야기.

바다에 버려진 유리조각.

 주기적으로 나에게 방문하는 우울증을 무기력하게 마주한 지 2일째 됐다. 주변에 아무도 만나고 싶은 기분도 안 들고 쓰고 있던 논문도 때려치우고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근래에 만난 애인의 행동과 말투 그리고 눈짓들을 하나씩 뜯어서 분석하며 나에게 왜 그런 말을 그 상황에서 했는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난 천하에 못된 놈이 됐다가 애인의 성격이 개차반이 되기도 한 극단적인 상상의 세계까지 만들기에 이르렀다. 어제 내가 전화했을 때 평소와는 다르게 너무 냉랭하게 반응하고 그를 비난하는 투로 했던 게 마음에 계속 걸리기도 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문자를 했다. 


"내가 요즘 기분이 우울해. 혹시 내가 다운돼 보여도 신경 안 써도 돼." 


 나는 문자를 보내고서 이번 주말은 만나지 말고 그냥 혼자 방에 있고 싶다고 할까 생각하고 있었다. 괜히 만나서 남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았고 이런 기분이 일주일 정도 지속되면 곧 사라지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문자를 읽자마자 전화를 해서 나의 안부를 물었다. 


"괜찮아? 오늘 저녁에 만날래? 나 내일 쉬는 날이니까 우리 집에서 자고 내가 같이 시간 보내자." 


 나는 몇 초 생각하다 좋은 생각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이틀 동안 햇빛도 제대로 보지 않았고 집에서만 가만히 있는다고 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선 그냥 가만히 있자는 외침이 있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나 자신을 강하게 밀어 붙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대로 가만히 집에만 있다간 증세가 심해지거나 약을 먹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도 조금은 있었다. 


"나 바다 가고 싶어." 


 어느새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렁그렁 눈에 맺혀있었다. 그가 나의 가족보다 나를 신경 써준다는 것에 감격한 것인지 보고 싶었던 바다를 보게 되어서 신이 나 흘리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하자고 오늘 저녁은 내가 먹고 싶은 걸로 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린 청국장을 먹었다. (나는 콩류를 엄청 좋아하는데, 특히 두부와 청국장을 제일 좋아한다.)


 우린 아침 9시 30분 기차를 타고 보령으로 향했다. 전날 비가 엄청 쏟아졌지만 다행히 날씨는 정말 좋았다. 나는 해변에서 읽을 책과 과자 몇 개를 챙겼고 그는 평소와 같이 쉴 새 없이 수다를 옆에서 떨었다. 개그 욕심이 워낙 많은지라 듣다 보면 내 기분을 깜빡하게 만들기도 했다. 



 해변은 바람이 조금 불었지만 햇살도 적당했다. 앉아서 책 읽고 커피를 마시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 수는 굉장히 적었고, MT를 온 대학생 단체, 커플들, 가족들이 틈틈이 보이긴 했어도 바람소리와 넓은 간격 덕에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고 둘 만의 공간처럼 있을 수 있었다. 



 코로나와 긴 겨울을 보내고 따뜻한 봄에 해변을 나온 사람들은 모두 다 신이 난 듯 보였다. 갈매기와 비둘기에게도 새우깡을 나눠주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린 조용한 곳에 매트를 깔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는 '파친코'를 읽으면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이미 읽은 내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고 나는 스포일러를 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에둘러 설명하면서 혼자 좀 걷고 싶다고 빠져나왔다. 



 죽은 불가사리들과 흰색이 아닌 회색 깃의 갈매기들이 꽤 있었다. 보통 이곳에 오면 흰색 갈매기들을 마주하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회색의 갈매기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었다. 왜 그럴까 신기했다. 이곳 갈매기들은 호주 갈매기들과는 달리 젠틀(?)해서 과자 먹을 때 좋았다. 호주에선 깡패 무리들처럼 음식을 먹고 있는 인간을 360도로 둘러싸서 조금씩 조금씩 접근한다. 부스러기라도 떨어질라 치면 너도나도 먹겠다고 어찌나 싸움을 해대는지 정말 무섭다. 그에 비하면 한국 갈매기는 신사이다. 

Seaglass를 줍고 다니는 나.


Seaglass

 조개와 소라 껍데기들 사이로 굉장히 신비로운 옥색의 투명한 돌이 몇 개 있길래 열심히 줍고 다녔다. 애인이 말하길 그것은 바다유리(Seaglass)인데 유리병이 깨지고 바닷물을 10년도 넘게 맞고 맞으며 날카로운 모서리 부분이 닿아서 부드럽게 된 것이라고 했다. 


불가사리 사진을 찍고 있는 애인님


 한때는 음료를 담고 있다가 버려지거나 깨져서 사람을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유리조각들은 자연과 함께하면서 마모되어 이렇게 아름다운 바다유리가 되었다. 이것은 마치 나와 10년도 넘게 함께해온 우울증과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우울증을 처음으로 겪으면서 나는 병원과 상담을 하며 2년을 보냈다. 죽고 싶다는 생각과 가족 이외엔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가족들에게 이해받는다는 느낌마저 없었기에 나는 가족 안에서도 소외됐었다. 그들은 '밥을 잘 안 먹어서 그래.', '시간 지나면 그냥 좋아서, 요즘은 누구나 걸리는 병이고 감기 같다고 하더라.', '정신이 약해서 그래.' 등등 조언인척 하는 말들을 하면서도 결국 내 탓이고 내가 뭘 크게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정신적 감기에 걸린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난 내가 뭔가 크게 잘못한 것이라고 내 비난을 해댔고 나는 곧 무쓸모하다고 나 자신을 정의하기도 했다. 산산이 부서지고 남들에게 피해만 입히는 유리조각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면서 나는 유연함을 배웠다. 명상을 배우고 요가를 배우며 정신을 가다듬고 아직도 '유별난' 자식이라고 이야기하는 가족과 거리를 두면서 나는 조금 더 내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가족들보다 등산을 통해 배운 것이 백만 배는 더 많았다. 산은 나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않는다. 그저 내게 조용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돌, 나무와 물을 제공한다. 현재를 만킥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과거의 뾰족해서 나 자신조차도 베어 버리는 유리조각은 어느새 마모되어 아름다운 조각이 되었다. 


 


 그날 바다를 다녀온 뒤 마음이 조용해졌다. 비난을 멈추고 자연의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사실 그날 바다에 처음 도착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얼마나 깊숙이 내 발로 걸어 들어가면 이 바다에서 죽을 수 있을까'였다. 그러면서 바다 쪽으로 걷다가 머릿속까지 짜릿해지는 차가운 바닷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여태까지 내가 왜 우울할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보면 수만 가지의 이유가 쏟아져 내린다. 가족부터 일까지 수만 가지의 우울한 이유는 내가 우울한 게 당연한 것 마냥 나를 밀어붙인다. 하지만 우울하지 않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궁금했다. 그중에 하나는 아마 내가 죽게 되면 나를 신경 써주고 사랑해줬던 사람이 굉장한 충격에 평생은 아니더라도 꽤 오랜 시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게 될 테니 조금 더 행복한 나로 살아가며 그들 곁에 함께 있으면서 그들에게도 그들이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80. [분석] 닥터 파우스터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