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 아닌, 시선으로 만들어지는 감정
기하학적 묘사의 반복으로 소란해지는,
가련한 탐미주의자의 자조어린 독백..
La Jalousie | Alain Robbe-Grillet (1957)
나는 소설을 빠르게 읽는 사람이 아니다. 줄거리를 따라가며 단숨에 페이지를 넘기는 독자라기보다는, 한 문장을 붙들고 오래 머무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소설은 끝까지 읽기가 쉽지 않다.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등장인물이 늘어날수록 오히려 읽는 속도가 느려진다.
그런데 알랭 로브그리예의 『질투』를 읽는 동안에는 조금 다른 경험을 했다. 이 소설에는 극적인 사건이 거의 없다. 대신 하나의 장면이 반복된다. 창문 옆에 놓인 의자, 테이블 위의 잔, 바닥 위로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 같은 장면이 다시 나타나고 또 다시 나타난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어느 순간 그 반복 덕분에 읽기가 오히려 편해진다. 사건을 따라가는 대신 누군가의 시선을 따라가면 되기 때문이다.
『질투』는 전통적인 소설처럼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 대신 하나의 시선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 작품은 이름 없는 화자가 자신의 아내 A와 이웃 프랑크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며 그들의 일상을 집요하게 관찰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 의심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독자는 단지 반복되는 장면을 보게 될 뿐이다. 창문을 통해 바라본 식탁의 풍경, 저녁 식사 자리의 의자 배치, 밤에 돌아오는 자동차 소리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이러한 반복은 질투라는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질투는 사건이 아니라 해석을 만들어 내는 감정이다.
이 소설의 가장 특이한 인물은 화자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직접 드러내지 않는다. 이름도 없고 “나”라는 표현조차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는 분명히 그의 존재를 느낀다. 그는 모든 장면에 있다. 테라스의 세 번째 의자, 식탁의 세 번째 자리 같은 작은 단서들을 통해 그의 존재가 암시된다.
이 화자는 행동하지 않는다. 대신 관찰한다. 그리고 그 관찰은 점점 더 세밀해진다. 의자의 각도, 빛의 방향,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집요하게 기록된다. 그의 시선은 점점 좁아지고, 점점 집착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떤 사건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감정이 세계를 어떻게 바꾸어 보이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읽힌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이야기 속 인물이라기보다 하나의 감정을 둘러싼 위치처럼 보인다. A는 끝내 다 알 수 없는 타자이고, 프랑크는 경쟁자라기보다 화자의 불안이 밀려가 닿는 바깥의 표면이다. 그리고 정작 가장 선명한 인물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화자 자신이다.
그는 끊임없이 바라보지만, 그 시선은 결국 상대를 향하기보다 자기 안의 흔들림을 증명한다.
그래서 『질투』의 인물들은 누구의 편인지, 무엇이 진실인지보다 한 감정이 세계를 어떻게 뒤틀어 보이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존재들에 가깝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요즘 자주 보게 되는 연애 프로그램을 떠올렸다. ‘나는 솔로’나 ‘솔로지옥’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사람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관찰한다.
누가 누구와 오래 이야기했는지, 누가 누구를 바라봤는지, 누가 누구와 웃었는지 같은 사소한 장면들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작은 장면 하나로 사람들은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만든다. 어떤 사람은 그 이야기 속에서 점점 더 확신을 얻고, 어떤 사람은 그 이야기 속에서 스스로를 가두기도 한다.
질투는 이렇게 작동한다. 현실보다 머릿속에서 더 크게 자란다. 어떤 장면은 확대되고, 어떤 기억은 반복되고, 어떤 가능성은 끝없이 상상된다.
그래서 질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과도한 힘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의 한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 보다는 한참 젊었을 때. 그때는 감정을 지금처럼 정리하지 않았다. 누군가가 곁에 있어도 다른 감정이 생기기도 했고, 그 감정을 꼭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지금 돌아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던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감정을 계산하기보다 감정이 그대로 통과하도록 내버려두는 쪽에 가까웠다.
그 과정 속에서 질투라는 감정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누군가의 마음을 온전히 갖고 싶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안. 그 감정 속에서 나는 조금씩 알게 되었다.
질투는 타인을 바라보는 감정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감정이라는 것을.
질투라는 감정은 오래전부터 인간과 함께 존재해 왔다.
심리학에서는 질투를 불안, 두려움, 분노 같은 여러 감정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그것을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그 감정이 완전히 사라진 인간 관계를 상상하기도 쉽지 않다.
가족이라는 관계에서도 그렇다.
사람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감정이 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사랑도 언제나 균형 잡힌 감정은 아니다. 그래서 질투라는 감정은 어쩌면 인간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에서 자연스럽게 비롯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질투의 대상은 대부분 사라진다. 남는 것은 그 감정을 통과했던 자신의 모습이다. 그래서 나는 질투라는 감정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사람을 무너뜨리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감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 감정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고, 다시 일어나고, 방향을 바꾸며 살아간다.
질투는 결국 타인을 향한 감정이 아니라, 자신을 향해 돌아오는 질문이다.
삶을 건너다 보면 어떤 감정들은 결국 이렇게 남는다. 누군가가 아니라 그 감정을 지나온 자신의 모습으로.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질투라는 감정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인간에게는 하나의 역설적인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앞으로 주말에는 아페리티프를 조금 더 천천히 즐겨볼 생각이다.
-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