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나의 여섯 번째 손가락

<마이크로 리추얼> 장재열

by Letter High

아침마다 책장 앞에 앉아 출근하면서 들고 갈 책을 고르는 시간을 가진다. 바쁜 마음이 가라앉기를 잠시 기다렸다가 눈빛의 속도로 읽지 않고 손끝의 속도로 천천히 책 제목들을 만져본다. 그러다 손끝이 탁 걸리는 책이 있다. 그러면 그 책을 가지고 나가서 귀를 닫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책을 꺼내 잠시 그 안에 숨었다 나온다.


‘요즘 왜 걸리는 책이 없지?’ 몇 주가 지속됐다. 나의 시간은 가득 채워져 있는데 자기 전에 생각해 보면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나를 잡아주는 무언가가 없는 느낌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번아웃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고 큰 성과를 낸 사람뿐만이 아니라 누구나 번아웃이 올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내 일에 대해 칭찬도 격려도 야단도 없이 계속 일을 하고 있다면 번아웃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영상으로 내가 번아웃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현재 내 상황에 대해 말한 것 중 가장 비슷했다. 무기력에 나의 일상이 겁먹어 움직이고 있지 못하는 것을 스스로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다. 나의 일상에 무엇을 해줘야 할까 고민하던 중 고맙게도 이 책이 나의 손끝을 멈추게 했다.


작가는 첫 번째 번아웃을 글쓰기와 산책으로 이겨냈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에 어떤 것들을 손으로 쓰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독서노트가 생각났다. 내가 쓰는 것 중에 손으로 쓰지 않는 것은 독서노트라 이 부분을 읽고 독서노트도 손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읽는 도중에 마음에 드는 글은 타이핑해 두는데, 이것을 손으로 적으면 글을 읽는 리듬이 깨져 독서노트는 손으로 적지 않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번에 방법을 바꿔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흐름을 깰 수 있는 필사는 밑줄로만 대신하고 책에서 내가 얻은 질문만 적는 독서노트이자 질문노트로 바꿔서 적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독서노트 쓰는 방식을 바꾸지 않았을 것이다. 독서노트 쓰는 방식을 바꾼 첫날, 책을 다 읽고 덮자마자 책을 읽는 것이 훨씬 즐거워진 것을 느꼈다. 작은 노트에 한 페이지당 질문 하나씩 쓰고, 생각날 때마다 그 질문에 대답을 하고, 며칠이 지나 더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그 밑에 이어 적는다. 또 다른 즐거운 변화는 밖에서 핸드폰을 거의 보지 않게 되었다. 병원이나 은행에서 대기시간에 핸드폰을 보지 않고 질문노트를 꺼내 내가 한 질문들에 책임을 다 하려고 한다.


작가가 소개한 셀프상담도 해보기로 했다. 나의 고민을 스스로 상담해 주는 것은 해 본 적이 없어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은 일기를 쓰는 것들 중에 이 셀프상담 페이지를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평소에는 모닝페이지와 목표 쓰기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떠오르는 것들을 모두 쓰는 것이 모닝페이지라고 하지만, 아침부터 쓰는 글에 부정적인 내용은 쓰기가 어려웠다. 쓰는 동시에 내 눈으로 보며 다시 내 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이라 좋은 말들만 의식적으로 쓰게 되었고, 목표 쓰기 페이지에도 나의 부정적인 감정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렇게 내 안에는 있지만 해소되지 못한 말들이 이 페이지에 자리를 잡았다. 정리되지 않아 불편한 감정들, 요즘 걱정들 등을 이 페이지에 편하게 쓰다 보니 정돈되지 않은 나의 감정도 건강하게 해소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페이지의 마무리는 작가가 가이드한 대로 셀프상담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 내가 여기저기 쏟아놓은 단어들을 스스로 정리 정돈하며 치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 과정에서 객관성이 생겨 나의 고민에 너무 깊이 빠지지 않게 해 준다. 그리고 하루하루를 조금 더 열심히 살고 싶어졌다. 어제 내가 쓴 고민을 오늘의 내가 상담을 해 주려면 책을 읽어도 조금 더 읽어야 하고, 대화를 하더라도 ‘이 말이 어른다운가, 나 다운 말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렇게 연필을 든 나의 손은 오늘도 내 마음 위에 쌓인 먼지를 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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