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떠난 유럽,에서 길을 잃었다

의존과 독립, 홀로서기라는 마음

by 유하



기대고 싶지 않은 데도 자꾸만 기대게 된다면 그에 집착하는 마음까지도 있는 그대로 주의해서 바라보세요.
시선을 내부로 돌려 내 마음을 관찰하고 돌보는 순간 나를 힘들게 하는 문제들이 도미노처럼 해결됩니다.
- 홀로서기 심리학 / 라라 E. 필딩



삐걱삐걱한 소리와 함께 시작한 유럽의 첫 시작은 마냥 달콤하지는 않았다. 유럽으로 오기까지 쉬웠던 일정이 아니어서였을까, 체력의 방전이었을까. 어떤 이유에서든 시작과 함께 생각보다 따뜻한 날씨의 유럽을 만나게 됐다.


내가 늘 보던 건물들과 다른 건물들,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사람들까지. 어쩌면 아주 당연한 거였는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시작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며칠은 괜찮았다. 신기한 것도 많았지만, 나를 만나기에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 컸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 틈 사이에서 그들을 관찰하는 것도 있었지만, 같이 간 B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많지 않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걸어 다니고 또 걸어 다니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식을 좋아하지만 한식보다 빵과 버터, 고기를 먹으면서 보내는 시간도 어색하고 집에서 있을 때처럼 머리를 한 올 한 올 다 올려 똥머리를 만들고 부스스한 민낯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이상한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어쩌면 처음 보는 사람들이자, 자주 보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외적으로는 아주 자연스러운 나의 모습을 쉽게 보여주었지만 내적으로는 그렇지 않았으니 그 상황이 늘 괴리감의 순간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나는 처음에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에 루지 같은 롤러코스터를 타고서 제대로 감기몸살에 걸렸다. 몸에 열이 올라오고 추우면서도 덥고 머리가 아픈 그 상황에서야 히터를 튼 차 안에서 비상약으로 가져갔던 타이레놀을 물과 함께 먹고, 숙소를 향해 가는 길에서 잠깐 잠들었던 쪽잠과 떨어진 컨디션으로 한껏 더 뾰족해진 마음들까지. 아픈 와중에도 편안하게 가 아닌 모든 상황들을 신경 써야 하는 그 마음 때문에 완전히 더 지쳐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정상에서 내가 레버를 내려야하는지는 몰랐지..



그런 와중에도 나는 어떻게 보면 핑계 아닌 핑계지만, 절실히 의존할 수 있는 누군가를 바랐다. 내가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


기댄다는 것은 무엇일까. 독립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의존적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 그 모든 상황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주어진 것을 해내는 것에만 급급했던 시간들을 보내서였을까, 여행을 와서도 주어진 시간만 잘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문제였을까. 나는 J가 아닌 P니까,라는 생각으로 아무런 계획도 하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달려가는 여정은 결국 도착한 지 일주일이 돼서야 제대로 놓아버리게 되는 시간이 됐다.





체스키크룸로프, 여행을 떠나기 전 사진으로만 봤었던 아름다웠던 주황색 지붕의 집들. 그곳을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기대했던 것도 잠시 그날 처음으로 익숙한 B가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여행을 돌아다니게 됐다.


성 위에서 바라본 사진과 하나라도 눈으로 담고 싶었던 그 아름다움을 집에 있는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달래기는 했지만, 마음을 터놓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서 겉돌기만 하는 것 같았던 순간들. 그리고 나름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아름답다고 생각했던 체스키크룸로프는 막상 그 마을이자 골목들을 돌아다니면서도 아름답다는 마음이 스르륵 희석됐다.


이상하게 예쁘지 않은 곳, 그리고 기대했던 만큼 눈에 들어오지 않는 곳. 중간중간 장난감을 보면서 신기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마음이 정착하지 못하고 붕 떠있는 느낌이었다. 뜨거운 햇빛을 선글라스로 가리고 발걸음을 옮기면서 하나라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어대지만 의미 없이 손가락만 누르는 느낌이었으니까. 그제야 내가 뭔가 이상하다고 눈치채면서,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익숙했던 내가, 이 낯선 곳에서 혼자 있고 싶다니. 꼭 많은 사람들과 있는데도 나는 여행의 스케줄을 따라 잘 이동하고 있음에도 이 공간에서 길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숙소에서 밥을 먹으면서 혼자 체스키크룸로프를 다닌 B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서운함도 밀려왔지만 다른 마음도 들었다. 나는 왜 혼자 다닐 생각을 못하고 있을까,라는.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독립적으로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다니는데, 왜 나는 꼭 누군가와 함께 하는 걸 생각했을까. 자유로움을 바라면서도 나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가둬두는 누군가를 의존하는 그 마음이 민망해지고 부끄럽기까지 했다. 나는 30이 넘고도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이런 마음을 정리할 나만의 시간이 너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된 순간, 그 마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이 찾아왔다. 생각하지 못했던 오스트리아 빈이라는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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