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을 연결하고 있는 중이야
"장래를 미리 내다보고 점과 점을 연결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나중에 짜 맞추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언젠가 인생의 어딘가로 이어져 열매를 맺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다."
- 스티브 잡스(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하니까 낯선 감정이 몰려든다. 어색하고 쑥스럽고, 묘하다. 그만큼 글을 쓰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 묘한 감정을 내려놓고 적어보려는 이유는 나는 나를 제대로 정리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색하고 낯선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조금씩 정리해보려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 시간이 나의 점과 점을 연결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간의 흐름이 왜 이렇게 빠른 걸까? 벌써 8월이라니. '벌써'라는 말을 1월 이후로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것 같지만, 정말 8월이 시작됐다. 8월의 시작을 상기시키려고 한다기보다는 작년 8월 브런치 작가로 선정된 후, 쓰다가 잠정적으로 멈추던 글을 오랜만에 다시 쓰게 됐는데 그게 또 하필 8월이라 신기한 마음에서였다.
어쨌든, 시간의 흐름에 나름 예민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5월 말 갑자기 퇴사를 하게 된 것 때문이다. 퇴사에 정말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말 어쩌다 보니 아주 자연스럽게 퇴사를 하게 됐다. 그래도 나름 계획적이기보다 즉흥적인 성향에도 불구하고 루틴을 잘 잡던 것이 스르륵 무너지게 됐다. 그 계기는 어쩌다 보니 하게 된 퇴사처럼, 어쩌다 보니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됐기 때문이다. 바로 유럽으로.
유럽은 정말 막연하게 그리기만 했던 곳이다. 당장 가고 싶다기보다,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면서 사진으로만 봤던 곳이었다. 맑아서 속이 다 비치는 푸른 호수와 동화 속의 그림처럼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놓은 곳 같은 할슈타트, 주황색 지붕이 예뻤던 체스키크룸로프까지.
현실적이지 않은 곳 같은 그림 같은 풍경들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유럽을 가려면 기본 5일 이상은 시간을 빼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웠던 것도 있었다. 3교대 간호사를 할 때도 그랬지만, 간호사를 이직하고 사무직으로 일하게 되면서 더더욱. 그래서 당장 지금은 갈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곳을 방문하게 됐다는 건, 유럽을 다녀와 한국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도 참 꿈같기도 하고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그 보름간의 기간이 나에게 또 다른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는 생각도 전혀 하지 못했었다. 환상적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너무 힘들어서 깨고 싶은 악몽처럼 느껴지기도 했던 그곳에서의 시간들은 이상하게도 정말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아서 내가 다녀온 것이 맞을까 싶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진짜 나에 대해 알아야 되겠구나, 하고 모든 것을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으로 돌리게 된 이유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 유럽 여행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 보자면... 참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바빴다. 유럽 여행이 결코 만만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그 시작은 달콤하지만은 않았다.
시작은 비행기표였다. 30시간 전이 되면 유료서비스가 아닌 체크인이 풀린다고 해서, 체크인을 하기 시작했는데 이상하게 표가 체크인 시간이 됐는데도 부가서비스로 좌석을 선택하듯 유료로 진행이 됐다. 서비스의 오류인가 싶어서 표를 선택하고 결제를 하지 않고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항에서 수화물을 보내면서 확인하는데 유료서비스를 진행해야 해서 돈을 지불하거나 좌석을 변경해야 된다고 했다.
체크인 시간이 돼서 좌석을 선택한 건데 이것도 유료로 진행되는 거냐며 몰라서 질문을 했더니, 체크인 시간이어도 내가 좌석을 임의로 선택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결국 유럽 여행을 같이 가는 B와 첫 비행기는 가까이, 경유하고 타는 두 번째 비행기는 가까이 붙지 않는 좌석으로 선택되면서 둘 다 의아함 뿐만 아니라 장시간을 타야 하는 비행시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거기다.. 장시간의 비행을 하는데, 자리를 붙여주는 대신 정말 끝자리로 선택이 되면서 비행기 안은 춥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더위와 씨름하게 됐을 뿐만 아니라, 비행기가 흔들리면서 그 공포감에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첫 시작은 악몽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진짜 눈만 뜨면 다음 비행기에 탑승 중이거나, 도착하는 곳인 뮌헨공항이기를 얼마나 바랐던지.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그 장시간의 첫 비행을 마치고 경유하는 아부다비에 도착해서도 정말 무사히 넘어가지 않았다. 경유시간에 못 잤던 잠을 보충하면서 핸드폰을 하다가, 공항 와이파이보다 미리 로밍해 갔던 데이터가 먼저 잡히면서 데이터를 다 써버리지 않나(이건 진짜 좀 바보 같기도ㅠㅠ)..
뮌헨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러 가기 위해 버스에 탑승하려고 공항 밖으로 나오는 순간, 공항과 아부다비의 온도 차이에 뿌옇게 가려진 안경으로 시야가 확보가 안되면서 계단을 못 보고 넘어지기까지.. 발목이 살짝 삐끗했는데, 다행히도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 놀라서 쿵쿵 뛰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넘어진 보고 놀라 달려온 B와 함께 장난치면서 시작부터 이렇게 삐꺽거리니 얼마나 버라이어티 하고 재밌을까, 달래면서도 막연한 불안감은 그렇게 시작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