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형에서 스케치로, 화실에서 그림 그리기
어제 일찍 잠들어야지-라고 아침에 눈뜨자마자 생각했던 것 같은데 어김없이 잠든 건 12시가 넘어서였다.
오전에 화실을 가야 해서 일어나야 하는데 알람을 놓쳤다.
아직 시간 좀 남았네.. 하고 잠깐 눈을 감았는데, 그 사이 시간이 이렇게 훌쩍 가버렸을 줄이야.
어제 너무 많이 먹어서 조금 가볍게 보내기 위해 아침을 건너뛰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아침까지 먹었으면 제대로 지각할 뻔.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출발해서 그런지, 다행히도 제 시간 안에 도착했다.
오늘은 지난주에 그리던 원기둥과 구를 이어서 원뿔이다. 원뿔을 그리는 건 뚝딱이 었는데, 명도를 주고 그림자를 칠하는 건 과정도 결과도 처리가 아쉬웠다. 선생님의 조언으로 그림을 마무리하고, 6칸 중 마지막 한 칸에는 그렸던 것 중 어려웠던 것을 한 번 더 그리기로 했다.
그리기는 쉽지만 그림자를 넣고 명도처리하기가 어려운 구를 한 번 더 할까 하다가, 그림 그리는 것부터 어색했던 육면체를 한 번 더 그렸다. 처음에 그렸을 때보다 실력이 좋아졌다는 칭찬에 조금 부끄러워졌다. 그리면서 헤매서 그런가, 아니라고 부정적인 마음이 살짝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진 뒤 내가 그린 그림으로 꽉 찬 도화지를 내려다보며 묘한 마음이 들었다. 분명 처음에 그렸던 것에 비해 오늘 그린 그림이 확실히 모양이 잘 잡혔고, 실력이 나아진 게 맞는데 왜 받은 칭찬이 어색하고 부정하는 마음이 올라올까?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마음은 먹지 말자, 칭찬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나를 스스로 존중해 주자. 하는 생각들을 가져야지 하면서도 아직은 어려운가 보다. 겸손해야 된다는 생각을 주입식 교육받듯 가져와서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시간만 보내서 일까? 어떤 결과물을 내기보다 좋아서 배우러 왔음에도 나에게 스스로 떳떳하게 칭찬해주지 못해서 마음 한편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완성된 것을 한 번 더 보고 사진으로 남기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도화지 한 장을 다 채우고 실력도 발전하고 있네, 정말 잘했어. 하고.
도형을 그렸으니 이제는 진짜 스케치를 하기 위해, 일반 정물로 넘어가자고 했다. 유려한 곡선미가 있는 자연물과 다르게 인위적으로 선이 연결되는 정형화된 물건을 차례대로 그리기로 했다. 체리와 아보카도를 차례차례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설명해 주시며 선생님이 질문했다.
소묘가 더 재밌으세요?
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5명이 수업을 받는 곳에서 나 혼자만 소묘를 그리고 있었다. 다른 분들은 수채화나 유화 등, 물감으로 색을 넣고 있었다. 그 화려한 색감들 사이에서 소묘만 하고 있는 내가 궁금했나 보다. 소묘도 좋지만 화실에 그림을 배우러 온 김에, 유화나 수채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보는 걸 추천해 주셨지만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작품보다 드로잉을 하는 지금이 더 좋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사물을 연습하다가 화려한 색감을 이용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질 수도 있지만, 오로지 연필 하나로 기초부터 채색까지 과정별로 담아내는 과정을 더 연습하고 싶었다.
그리고.. 자연물로 넘어오자마자 어색해진 연필 선을 보면서, 아직 물감을 사용하기에는 멀었구나.라는 생각만 더 들었지만. 음.. 이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과정이니까 잘했다고 칭찬해 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