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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Nov 05. 2024

주저하게 되는 이유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만..


주 2회 필라테스를 다니고 있다. 굉장히 부담스러운 가격이 빠져나가고 있음에도 멈추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필라테스를 하고 나서 잦은 목과 어깨통증이 많이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자세가 얼마나 좋지 않은 건지 굳어진 습관은 고쳐지기 어려웠다. 그래서 일주일마다 삐꺽 대는 몸을 고친다는 느낌으로 재활치료를 받듯 꾸준히 하고 있었다.


헬스를 한다고 거금을 들여 pt를 했다가 오히려 무릎이 안 좋아지는 바람에 운전도 못하고 걸어 다니지 못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져서 가끔 무릎통증을 호소하는 게 고질적인 문제가 되어서 그런지, 필라테스를 하지 않으면 더 심해지고는 했다.


거기다 나름 필라테스 유목민 생활을 해서 그런지 찰떡 같이 마음에 드는 선생님을 찾기가 어려웠는데 이번에 알게 된 선생님은 정말 잘 맞아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는데.. 오늘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다.


갑작스러운 이사 탓에 센터를 더 이상 나올 수 없다는 소식이었다. 아쉬운 마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런 질문을 하셨다.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하고 계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못했던 이야기들도 제법 많이 나눈 사이여서 그런지(필라테스를 하면 생각보다 많은, 이상한 모습을 공유하다 보니 급속도로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타고난 J의성향을 가진 분이라 그런지 계획들을 자주 묻고 답하고는 했었는데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질문이라 제법 크게 다가왔다. 앞으로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는 아쉬움 또한.



"계속 피드 올리면서.. 툰계정도 해보려고요."


 

화실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게 다른 사람에 비해 어렵지는 않았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고 나니 쿵쾅쿵쾅 심장소리가 귓가에까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한 번 무언가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순간, 계속 계속 내가 경험한 일상들을 글뿐만 아니라 그림으로 남겨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툰이 맴돌았었는데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인정을 하게 된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계정 운영을 2개나 한다는 게 과연 맞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생각은 저 멀리 치워버렸다.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는 이걸 진짜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한 번 입 밖으로 꺼낸 것은 결과가 어떻게 됐든 이뤄내고 싶어지는 마음이 더 단단하게 잡히기 때문이다.


어울린다며 툰계정 꼭 알려달라고 거리는 멀어지지만 온라인에서는 가까우니 잘 보겠다는 선생님의 말에 감사하다는 대답으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와서 가볍게 점심을 샌드위치로 해결하고 정리를 한 뒤 멍하니 소파에 앉아 쉼을 만끽하던 것도 잠시, 툰 생각이 났다. 내 방 책상에 아이패드를 가져와 잔잔한 음악을 재생하고 그림을 그리려는데... 갑자기 고장 난 것처럼 손이 멈췄다.  


캐릭터도 그려져 있고, 그 캐릭터로 콘티를 짜고 그림을 그리기만 하면 되는데.. 그림이 안 그려졌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재생되고 있는데 아이패드에 표현을 하려고 하니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렇게 안 그려지는데, 내가 과연 그린다고 하는 게 맞나? 갑자기 부담스러운 상황에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오는 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읽어야 할 책이 있어서 다시 앉은 책상에서 책을 읽고 정리를 하던 찰나, 초록색의 표지가 눈을 사로잡았다. 가까이에 두고 천천히 읽고 있었던 책이었는데, 지금 딱 읽어야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나, 뒷걸음치고 있는 마음을 다시 붙잡아온다.


아방 선생님이 해주셨던 충고.
만약 일러스트를 커리어로 가져가고 싶다면, 세상 모든 곳에 자신의 그림을 올리고 알리라는 것. 그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 그림이 부끄럽고 숨고 싶을 때마다 아방 선생님이 한 말을 다시 생각했다. 그냥 업로드하자고, 최대한 많은 사람이 나를 알도록 하자고 생각했다.
 
- 다시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어 /반지수



그렇게 하지 말자고 하면서도, 또 그림을 표현하면서 완벽함을 논하고 싶었나 보다. 내 그림의 장점이 아닌 못난 점만 가득 보여서 그럴까 그림도 못 그리면서 올린다는 게 말이 되나 싶어져서 그 두려움에 또 사로잡혔나 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 주면서도 계속 완벽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뒤로 미루고 또 미뤘다. 실행하다 보면 답이 나온다는 걸 알면서도 주저했다.


표현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남기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내가 남기고 싶은 순간들을 그림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일기일회, 오늘의 한 줄 : 역시 말은 입 밖으로 꺼내야 하고, 두려움이 들 때는 책이 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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