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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터어리 Jun 07. 2024

명함 없는 일꾼들

김러브의 다섯 번째 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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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여니들! 이 레터가 발송되는 날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야. 

직장을 다니는 연이들 대부분은 쉬고 있겠지? 조금 있으면 시작되는 황금연휴에 맞춰 연차를 쓴 연이들도 있을지 궁금하다. 하루 휴일은 달콤한 만큼 너무 짧게 느껴져서 아쉬우니까. 

어쨌든 수요일 아침에 뒹굴거리며 늦잠을 잘 수 있단 건 상상만 해도 근사한 일이야.







   근데 그거 알아?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근로자의 날은커녕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심지어는 24시간 

내내 퇴근하지 못하는 일꾼들도 있대.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지? 21세기,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이번 레터에서는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조명받지 못했던, 심지어는 홀대받아 왔던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를 소개하려 해.  







   책 제목이 신선하지?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계기도 제목에 끌려서야.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대학원생, 정규직 서비스업 등 여러 일을 해오며 돈을 벌었지만 단 한 번도 직장으로부터 받은 어엿한 명함을 가져 본 적이 없었어. 대게 우리는 ‘직장인’이라고 하면 ‘회사원’이라는 단어와 동치로 생각하잖아. ‘회사원’을 떠올리면, 회색 정장을 입고 악수를 건네고 명함을 교환하는 이미지가 

자동적으로 따라붙고 말이야.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명함 없는 노동자 중에서도 특히 1950~1960년대생 여성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담고 있어. 그들은 청소년 시기 때 학업을 채 마치지 못한 채 일터로 떠밀려 가장이 되었고, 60대 이상이 된 지금도 여전히 사회에서 일하고 있어. 캐셔, 농부, 미화원 등등…. 

공동체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노동임에도, 그들의 일은 명함이라는 상징물조차 얻지 못한 채 수시로 

화 되어 왔지. 심지어는 가사, 육아, 가족 간병 등의 일은 ‘집안일’이라는 미명 아래 노동으로 취급되지도 않았고 말이야. ‘경향신문 젠더기획팀은’이러한 우리 주위의 명함 없는 일꾼들을 찾아가 명함을 만들어 

주며 그들과 나눈 대담을 책으로 엮었어. 




♫•*¨*•.¸¸♪✧





   이 책은 ‘훈이네’라는 식당을 운영하는 ‘손정애’씨와 나눈 대담으로 시작돼. 그는 그 시절에 으레 그랬듯 출생신고가 늦게 되어 원래 출생 연도인 1950년 생보다 4살 어리게 호적에 올라가게 되었어. 중학교 졸업 후 제사 공장(실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다, 결혼 후 식당과 옷가게를 운영했지. 남편과 시아버지가 

쓰러지고, IMF 외환위기가 겹치며 그의 삶은 큰 폭풍을 맞게 돼. 장사에 병간호, 살림까지 도맡아 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굳은 의지로 가정을 이끌었어.




인터뷰 영상 보러 가기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정애 씨’가 있어. 그들은 전후 세대로 태어나, 10대에 여공으로 일을 시작하고, 

20대에 가사 노동을 도맡고, 30대에 다시 공장에서 일하다, 40대에 외환위기를 겪으며 비정규직이 되었어. 그리고 50대 이후부터 청소, 간병 등 저임금 ‘필수노동’ 일자리에 종사하기 시작했지.



   ‘필수노동'은 코로나19 이후 등장한 개념으로, 국민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며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일을 주로 뜻해. 고령층 여성은 청소와 돌봄을 축으로 필수노동에 빠르게 유입되고 있어. 그러나 전반적인 

일자리 불안정과 열악한 임금으로 인해 필수노동 종사자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어. 이름은 ‘필수’ 노동이지만, 말 그대로 홀대를 받고 있는 실정이지.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고 있는 명함 없는 일꾼들. 그들에게 ‘명함’은 어떤 의미일까?




   한 장의 명함엔 여러 정보가 담겨 있지만 그 사람의 진짜 이야기는 보여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평생 일한 여성들에게 명함을 찾아주고 싶었다. 누군가의 그림자가 아니라 삶의 주체이자 진짜 일꾼으로 살아온 그들의 가치를 기록하고 싶었다.  (중략) 출근은 반드시 공간의 이동을 의미하진 않는다. 앞선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집이 일터가 되는 노동, 수익만을 기준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던 노동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일은 ‘외부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는 것’이나 ‘명함을 가진 것’으로 정의 돼왔다. 그러나 게으른 시선이 그들을 어떻게 정의하건 말건 이미 오래전부터 스스로의 일을 정의하고 찾아온 사람들이 있다.




한 번도 직장으로부터 명함을 받아본 적 없는 건, 삼십여 년 전 부산에 내려와 지금까지 일하는 우리 엄마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야. 그는 20대에 미화당 백화점*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했고, 그 뒤에도 쭉 백화점, 아웃렛 등에서 일했어. 강도 높은 업무로 인해 허리 디스크가 터졌지만 산업재해 적용을 받지 못했지. 그는 현재 주부로서 가사 노동을 전담하고, 시댁 식구와 친정 식구의 간병을 하고 있어. 하지만 엄마를 ‘가사노동자’이자 ‘요양보호사’라는 역할의 노동자라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될까?   

   * 2001년에 파산한 부산 광복동 소재의 백화점



   카페, 백화점 등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알바’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야. 세상에 있는 노동의 형태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그들 중에는 물론 단기 아르바이트 계약도 있겠지만 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일하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서비스업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알바생’이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지. 그들에게는 부업이 아니라 주업(主業) 임에도 말이야. 이렇듯 업종에 따른 근로자의 인식 차별은 여전히 남아있어. 하물며 ‘외부로부터 경제적 대가를 받지 않는’ 주부는 어떨까? ‘무슨 일 하세요?’라는 질문에 ‘주부’라는 말 대신 ‘집에서 놀아요.’라는 말이 종종 사용되곤 해. 그들은 정말 집에서 논 것일까? 공간의 이동이 없을 뿐 그들은 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야.



   지금으로부터 60~70년 전에 태어난 여성들이 겪어야 했던 사회의 어두운 면은 아직도 대한민국 곳곳에 그늘처럼 남아있어. 명함이라는 상징물 하나가 개인이 가진 노동의 가치를 모두 설명하긴 어렵겠지. 하지만 굵직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평생을 일해야 했던 우리 사회의 숨은 주역들, 그들이 담고 싶어 했던 이야기가 책 속 명함에 녹아있어. 이번 연휴에는 이 책을 읽으며 그들이 그동안 내지 못했던 목소리, 그리고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




P.S. 이 글을 읽고 있는 일꾼 여니들, 명함을 한 장씩은 가지고 있어? 혹시 그렇다면 그 명함은 

여니에게 어떤 의미야? 만약 가지고 있지 않다면, 명함 없는 일꾼인 여니의 이야기를 들려줘! 

답장 기다리고 있을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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