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편집자의 시시콜콜
올여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나의 레터리스트 인스타 계정을 통해 건네진 한 통의 편지 안에는 여름을 맞이하여 한껏 신이 난 한 여학생의 이야기가 가득 들어있었다. 본인은 이러이러한 점들 때문에 여름을 너무 좋아한다. 혹시 레터리스트님도 여름을 좋아하시냐? 좋아하신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냐? 정도의 내용이었는데 읽는 내내 그 생기발랄함이 느껴져 참 좋은 그런 편지였다.
하지만 나는 네 계절 중 여름을 가장 싫어한다. 적당히 좋아하거나 좋아하지는 않는 게 아니라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물론 내 나름대로는 여름을 싫어하는 매우 타당한 이유를 여럿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름을 좋아하는 한껏 신이 난 여학생에게 어찌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나는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며(여름을 싫어하고 겨울을 좋아하니까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좋아한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러이러하다. 정도의 내용을 정성껏 적어 답장을 했더랬다.
그렇다. 난 겨울을 좋아한다. 연말과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좋고 너무 차가워 정신이 맑아지는 걸 넘어 거의 깨져버릴 듯 감싸대는 겨울만의 그 서슬 퍼런 공기가 좋다. 여름옷은 대부분 몇 번 빨면 영 별로가 되지만 겨울옷은 두껍기에 그럴 일이 적은 것도 참 좋다. 내 육체가 썩 근육질은 아닌지라 여름옷으로 멋을 내는 건 조금 난감하지만, 키 하나는 크기에 겨울옷으로 멋을 내기는 수월한 것도 역시 참 좋은 일이다. 그리고 추워서 그런지 세상이 대체로 고요하고 그 고요함에 걸맞게 종종 온 세상이 차분하게 하얀 것은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제일 큰 이유다. 난 이처럼 겨울을 참 좋아한다.
봄과 가을에 대한 나의 호오 역시 여름을 싫어하고 겨울을 무척 좋아하는 내 성향의 연장선 상에 있다. 봄은 물론 여름보다는 낫지만 이제 겨울이 끝나고 여름이 다가온다는 명백한 신호이므로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는다. 반대로 가을은 겨울만큼은 아니지만 이제 여름이 끝났고 곧 겨울이 온다는 표현이므로 꽤 좋아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겨울, 가을, 봄, 여름의 순인 것이다.
물론 가을을 그 계절이 단순히 여름의 종료선언 및 겨울의 티저라는 점에서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가을에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가 꽤 있다. 일단, 내 생일이 가을의 복판에 있다는 점, 꽃게와 새우의 제철이 가을이라는 점, 에어컨 전기세나 난방비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늘이 참 높고 세상 만물의 색이 정말 색감 끝내주는 필터를 씌운 것처럼 멋지게 보인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가을의 색.
가을의 색이 유독 멋지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는 이가 있을까? 그렇기에 ‘굳이..?’ 싶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있어 보이고 싶은 욕심에 굳이 비유를 해보자면, 가을의 색은 요하네스 브람스의 음악과 결이 비슷하다. 차분하고, 과장되지 않고, 담백한 그런 느낌. 그런 브람스스러운 색을 가을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반면, 한여름의 색은 과히 쨍하기에 오래 바라보기가 여러모로 부담스럽다. 시각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괜히 말이다. (비유하자면 여름의 색은 프란츠 리스트와 비슷하다. 물론 난 리스트도 좋아한다. 굳이 비유하자면 말이 그렇단 것이다)
며칠 전에도 나는 길거리에서 우연히 이 브람스의 색을 한껏 보았는데 하늘 가득 펼쳐진 파랑과 그 아래 늘어진 노랑과 빨강, 그리고 간혹 보이는 초록이 부담스럽지 않아 참으로 좋았다. 이 좋음은 매년 봐도 또 매년 좋은 진짜 좋음인지라 나는 이 가을 특유의 색이 무척 멋지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이 색이었지...이렇게 차분하게 멋진 색이었지’ 하고 말이다.
그리 멍하게 잠시 가을색을 보고 있는데 문뜩 느껴지는 가을볕 또한 참으로 가을스러워 또 한 번 좋았다. 볕은 볕이되 여름볕처럼 뜨겁지 않아 차분히 느끼기에 참 좋은 가을볕. 그런데, ‘그래, 볕이 이리 누그러졌기에 가을색이 저리 곱게 보이는 것일 테지’ 라는 생각을 하던 중에 갑자기 나의 아버지가 생각난 것은 대체 왜였을까.
나의 아버지,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상에 거의 최불암 옹만큼이나 부합하시는 나의 아버지. 아주 간혹 아내의 손을 빌려 안부 전화라도 건네면 전화를 받자마자 이내 끊고자 하는 티를 기어이 내시는 나의 아버지.
한평생 새벽별 보며 나가 일하고 한평생 아내와 아이들을 거뜬히 짊어졌던 나의 아버지는 거의 한평생 늘 엄하고 무서운 존재, 마치 한여름의 태양처럼 온누리에 막강한 그런 존재였다. 또 하필 내가 장남이었기에 더 불볕처럼 날 엄히 대하신 나의 아버지는 그래서 나에겐 늘 존경스럽지만 또 두려운 존재, 그리고 두려운 만큼 크고 큰 그런 존재였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기분 좋게 가을볕을 느끼던 차에 갑자기 나의 그런 아버지가 생각난 것은 아마도 그랬던 아버지도 이제는 나이가 꽤 드셨기 때문에, 그리고 나 역시도 언제부턴가 아버지의 그 나이 드심을 이미 충분히 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나는 마치 나이 든 것처럼 연해진 가을볕을 받으며 했는데 그게 바로 며칠 전의 일이었다.
계속 멍하니 볕만 쪼이고 있을 순 없었기에 이내 생각을 털어냈건만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전과는 다르게 이 고운 가을이 영 마뜩잖게만 느껴지는 것은 또 왜일까.
이 답 역시 알고는 있지만 굳이 꺼내어 적고 싶지는 않다.
무색한 바람이겠지만 이 마뜩잖은 가을이 길었으면,
겨울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
2024. 11. 21.
태양 같은 나의 아버지 생신날에.
레터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