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05.
주말 아침 내내, 파르메니데스 이야기를 대체 어떻게 풀어드릴까 고민하다 일단 밥부터 먹었습니다.
그렇게 밥 잘 먹고, 설거지는 제 담당이기에 설거지를 하고 여유롭게 슬쩍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데 사랑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벼락같이 저를 깨웠습니다.
"오빠! 음식물 쓰레기 바로 안 버렸지! 이거 초파리 생긴다니까!!"
싱크대 수챗구멍에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놓고 거름망을 제때 안 비웠더니 불호령이 떨어지네요.
어이쿠야, 파르메니데스고 뭐고 일단 눈 부비며 자리에서 얼른 일어나는데 문뜩, 어? 조금 이상합니다.
초파리가 '생긴다고?'
초파리가 생긴다는 건 없던 초파리가 생긴다는 건데 없던 초파리가 어떻게 생길 수가 있지..?
초파리가 '생긴다는' 건 말이 안 되는 말 아닌가..?
초파리가 뭐 갑자기 뿅! 생긴다는 건가? 말이 좀 이상한데?
아직 잠이 덜 깬 채로 사랑하는 아내에게 생각나는 대로 지껄여 봅니다.
"여보 근데 말이야, 초파리가 생긴다는 말은 좀 이상한 말 같아. 엄밀히 따지면 초파리가 생긴다가 아니라 초파리가 꼬인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 같지 않아?"
대답을 듣는 대신 괜히 등짝만 한 대 얻어맞고 수챗구멍을 얼른 싹 비우긴 했지만, 어쨌든 제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원래 어딘가에 있던 초파리가 음식물 냄새를 맡고 꼬였다, 그래서 우리 눈에 띄었다는 말은 수긍이 되지만 '초파리가 생겨났다'는 말은 너무 이상합니다. 원래 없던 게 갑자기 뿅! 이럴 순 없는 일일 테니까요.
거 참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말고 빨래나 같이 개자 하는 사랑하는 와이프의 말은 조금 야속하지만 그래도 뭐 괜찮습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누군가는 아마 제 말에 공감을 해주실 테니까요.
그리고 기원전 6세기, 고대 그리스의 파르메니데스만큼은 분명히 제 말에 크게 공감을 해줬을 테니까요.
파르메니데스라면 아마 기립박수도 쳐줬을 겁니다. 그것도 아주 길고 우렁차게 말이죠.
파르메니데스.
'세상은 결코 변하지 않으며 변하는 듯 보이는 건 다 우리 감각이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다' 라는 대단히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던 고대 그리스의 자연 철학자.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이야기한 헤라클레이토스의 철학적 라이벌.
사실 그가 펼친 파격적인 이야기는요.
제가 와이프에게 등짝을 맞은 그 생각, 그러니까 그놈의 초파리 어쩌고 하는 이야기와 다를 게 별로 없는 이야기입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이렇게 이야기했죠.
'있는 건 있는 것이고 없는 건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파르메니데스는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기에 있는 게 없어지거나, 없는 게 갑자기 있어지는 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 라고 말이죠.
그럼 여기서 다시 그놈의 초파리로 돌아가 볼까요?
초파리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있는' 초파리 한 마리가 거슬려서 짝! 하고 잡습니다. 휴지에 싸서 버리죠. 그럼 이제 초파리는 없는 것이 된 걸까요?
아닐 겁니다. 초파리는 비록 하늘나라에 갔지만 어쨌든 그 사체는 휴지통에 남아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사체는 조만간 또 어디로 향할 테니까요. 소각장으로 갈 테고 거기서 불에 탈 겁니다. 그럼 그땐 정말 초파리가 없는 것이 되는 걸까요?
역시 아닐 겁니다. 초파리의 몸을 이루고 있던 성분 중 일부는 재가 되어 흙으로 돌아갈 것이고 일부는 연기가 되어 공기 중에 퍼지게 될 겁니다.
이렇듯 초파리는 비록 주방에서 보이지 않게는 되었지만 결코 '없는 것'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고 있는 것이 없는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이죠. 파르메니데스의 말처럼 말입니다.
자, 그럼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없는 건 없는 것이다. 없는 게 있는 것이 될 수는 없다.' 파르메니데스의 이 말 역시 반박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무언가가 뿅! 하고 생겨난 그런 것이 있을까요? 수챗구멍에 생겼다는 초파리는 정말 원랜 없었는데 갑자기 뿅 하고 생겨난 걸까요?
그럴 리가요.
사랑하는 와이프의 손이 매워 미처 끝까지 주장하진 못했지만 절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초파리는 생겨나는 게 아닙니다. 그저 어딘가에서 냄새를 쫓아 찾아올 뿐이죠.
없는 건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있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역시 파르메니데스의 말처럼 말이죠.
네, 있는 건 있는 것이고 없는 건 없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게 없어지거나 없는 게 있어질 수는 없는 것이죠. 아무리 봐도 파르메니데스의 저 말에는 딱히 허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음..그런데 말이죠...그렇게 된다면 말이죠. 파르메니데스의 말에 어떤 빈틈이 없다면 말이죠.
우린 굉장히 난감하고 곤란한 앞으로의 이야기 역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의기양양한 파르메니데스는 이어서 이야기하죠.
그렇기에 세상 만물의 변화란 것은 모두 허상일 뿐이다. 라고 말입니다.
음...? 갑자기?
있는 건 있는 거고 없는 건 없는 거까진 알겠는데 왜 그게 갑자기 이렇게 급진적으로 연결이 돼??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무더운 한여름입니다. 나뭇가지에 덜 익은 땡감 하나가 달려있습니다. 누가 봐도 맛없어 보이는 연두색 땡감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가을이 되어 감은 익습니다. 이제 감은 먹음직스러운 주황색 홍시가 되었네요.
감나무만 근처에 있다면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모습이지만,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이건 새빨간 거짓이랍니다.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랍니다. 왜 그럴까요?
파르메니데스는 이야기합니다.
여름에 분명히 있던 연두색 땡감이 가을에 없어졌다?
있는 건 있는 것이고 있는 게 없는 게 될 순 없는데 연두색 땡감이 없어졌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라고 말이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름엔 분명 없었던 주황색 홍시가 지금은 있다?
없는 건 없는 것이고 없는 게 있는 게 될 순 없는데 주황색 홍시가 생겨났다?
역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라고 파르메니데스는 말하는 겁니다.
네, 그렇습니다.
우린 그저 '있는 건 있는 것이고 없는 건 없는 것이다'라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의 논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며 우리를 좀 난처하게 만듭니다.
있는 건 있는 것이고 없는 건 없는 것이기에 있던 땡감이 없어지고 없던 홍시가 생겨나는 이러한 모든 변화는 가짜고 허상이라고, 그게 그렇게 보이는 건 우리의 감각이 우릴 속이기 때문이라고 파르메니데스는 이야기합니다.
자신이 세운 논리 체계와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현실 세계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자 파르메니데스는 매우 과감하게도 눈을 버리고 머리를 선택했던 것이죠 (참...어떻게 보면 정말 무시무시한 뚝심이긴 한데...사실 좀 정신이 나가도 많이 나간 그런 뚝심 같지요..)
그런데 말이죠.
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숨 막히는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는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더 충격적인 이야기를 계속해서 이어나갔죠.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파르메니데스는 계절의 변화 같은 것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움직임' 역시도 실은 다 허구고 가짜라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열심히 뛰는 사람, 날아가는 나뭇잎, 굴러가는 돌멩이 등등.
이런 물체의 운동들 역시 모조리 다 우리 감각 기관들의 기만일 뿐 결코 진짜가 아니다, 세상에 움직이는 물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 라는 게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이었습니다.
...
이거 참...갈수록 가관이죠?
그런데 또 참 미치겠는 건 파르메니데스의 이 이야기 역시 반박해 내기가 영 쉽지 않았다는 겁니다.
파르메니데스는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죠. 여전히 매우 의기양양하게 말입니다.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6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