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06.
파르메니데스는 잠시만 넣어두고 이번엔 지하철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연차를 써서 나 홀로 한적한 평일 오후 3시입니다. 볼일을 보러 지하철을 타러 가죠. 역 플랫폼에서 잠시 기다립니다. 곧 지하철이 들어오네요. 역시 평일 오후라 그런지 지하철 안은 한산합니다. 여유롭게 지하철에 타서 목적지까지 잘 갑니다.
볼 일을 다 봤습니다. 이제 집에 가야죠. 시간을 보니 흠...오후 6시 10분입니다. 하필 딱 퇴근 시간에 겹쳤네요. 불안한 마음으로 이번에도 역시 지하철을 기다립니다. 곧 지하철이 들어오네요. 아...역시는 역시입니다. 이번엔 지하철 안에 이미 사람이 꽉꽉 들어차있네요. 이건 뭐 도저히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지하철을 타지 못 하고 그냥 보냅니다.
갈 땐 지하철에 잘 탈 수 있었는데 올 땐 지하철에 탈 수가 없었다?
이런 차이를 만들어낸 게 무엇일까요?
네, 답은 쉽죠. '빈 공간'입니다.
갈 땐 지하철 안에 빈 공간이 많았으니까 쉽게 지하철에 탈 수 있었는데 올 땐 지하철 안이 이미 너무 빽빽하니까 탈 수가 없었던 것이죠.
이처럼 무언가가 자신의 위치를 바꾸기 위해선 '빈 공간'이 필요한 법입니다.
조금의 빈 틈도 없는 아주 빽빽한 곳으로는 그 어떤 것도 이동을 하지 못하는 법이죠.
자, 그럼 이쯤에서 다시 시계를 뒤로 돌려 파르메니데스를 불러봅시다.
'있는 건 있다, 그리고 없는 건 없다' 라는 너무도 당연한 말로 우릴 난처하게 만들어버린 그는 이 빈 공간이란 것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파르메니데스는 당당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에 '빈 공간' 같은 건 없다고 말이죠.
네...이번에도 역시나 참 대단한 이야기를 파르메니데스는 풀어놓았습니다.
아니, 빈 공간이 없다니...? 그럼 내가 텅 비어있던 지하철에 여유롭게 탔던 건 대체 뭐란 말이야?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그것 역시 당신의 착각일 뿐이랍니다. 당신은 지하철에 탄 적이 없으며 제발 착각 좀 그만하고 냉철한 이성과 논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어이구 이거 참 미칠 노릇이지요..
그런데 말이죠. 이게 미칠 노릇이기는 한데 파르메니데스의 이야기를 천천히 하나하나 들어보면 이게 또 굉장히 그럴싸한 말이긴 합니다. (그래서 더 미칠 노릇이기도 하지요)
파르메니데스의 논리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먼저 파르메니데스는 '없음'이란 개념의 특징부터 짚어냈습니다.
'없는 건 없다', 이제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으신 말일 텐데요.
사실 이 말은요. '그냥 너무나 당연한 말'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굉장히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이 '없음'이란 말은요. '사과'나 '비행기', '사랑', '바나나', '태양' 등등의 다른 많은 일반적인 말들과는 사뭇 다른 비범한 특징을 하나 갖고 있습니다.
결코 자기 혼자서는 존재할 수가 없는 개념이라는 것, 그게 바로 '없음'이란 말의 특징이지요.
'없는 것'이라는 개념은 결코 홀로 있을 수가 없는 개념입니다.
'없음'이란 건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말이 조금 어렵고 아무래도 단박에 이해가 잘 되진 않으시지요?
자, 그렇다면요. 지금 한번 주변 누구 가까운 이에게 그냥 밑도 끝도 없이 '없어..'라고 말해보세요(톡을 해도 좋고요) 별 반응이 없다면 반응이 올 때까지 계속 딴 말은 절대 하지 말고 그냥 '없어..'라고만 해보세요.
그럼 분명 그분이 이렇게 되물을 겁니다.
“응?? 없어? 뭐가? 뭐가 없다는 건데?” 라고 말이죠.
네, 없다는 개념은요. 항상 이런 식으로 쓰입니다.
밥이 없다, 말이 없다, 생각이 없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 센스가 없다, 어이가 없다.
없다는 개념은 이렇듯 늘 '무엇 무엇이' 없다는 식으로 존재합니다.
즉, '없다'란 개념은 다른 어떤 개념이 꼭 함께 있어줘야만 비로소 그 의미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우리에게 '아 됐고 그냥 정말 아무것도 없는, 완전 싹 없는 텅 빈 세상을 생각해 보라니까?!'라고 해도요. 우린 그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생각하기 위해 일단 그 '정말 아무것'부터 생각을 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이제 그걸 머릿속에서 지워내는 식으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없음이란 건 이처럼 의존적인 개념입니다. 결코 저 홀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죠.
파르메니데스는요. 바로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마냥 없다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이야기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란 것 역시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텅 빈 공간? 아무것도 없음? 이런 개념은 모두 허구의 개념일 뿐, 우리 인간은 실제로 그런 완벽한 '무(無)'를 생각할 수조차 없다고 여겼지요.
없는 건 없다는 그의 말 안에는 나름대로 이런 심오한 사고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파르메니데스에게 '없는 것', 그러니까 '텅 빈 공간'이란 건 당연히 존재할 수가 없는 그런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은 사실 아주 조금의 빈틈도 없이 꽉꽉 차 있는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죠.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세상 그 무엇도 자신의 위치를 이동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빈틈없이 사람이 꽉꽉 들어차있는 지하철에는 우리가 올라타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파르메니데스는 이어서 보다 더 파격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지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 세계관의 대미를 장식한 그 주장은 바로 이런 것이었죠.
세상엔 그렇게 조금의 빈틈도 없기에, 세상 만물은 사실 모두 다 하나다
나는 나, 너는 너, 산은 산, 물은 물이 아니라 그냥 싹 다 하나. "We are the ONE이다!" 라는 이야기가 바로 파르메니데스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었는데요. 이걸 쉽게 이해하려면 육지와 섬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우리가 육지와 섬을 구분 지을 수 있는 것은 육지와 섬 사이에 바다라는 공간이 떡하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만약 바다가 없다면? 굳이 '섬'이라는 말이 생기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냥 다 연결되어 있는 평범한 육지 덩어리로 생각을 했겠죠.
나는 나, 너는 너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가 다른 무언가와 구분이 되려면, 그래서 그 무언가들이 서로 각각의 존재로 인식되려면, 무언가와 무언가 사이에는 꼭 이들을 구분 지어주는 빈 공간이 있어야만 하죠.
어떤 두 물체 사이에 빈 공간이 전혀 없다. 두 물체가 아예 찰싹 붙어있다. 그렇다면 그건 더 이상 두 물체가 아니라 하나의 물체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빈 공간이 없다면 나도 없고 너도 없고 오직 '하나의 우리'만 있게 되는 것이죠.
파르메니데스는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의 실제 모습은 우리가 보고 경험하고 있는 이런 세상이 아니라 모든 게 그저 하나인 그런 세상일 거라고 주장하며 자신의 방대한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이걸 바로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론 一者論'이라고 합니다)
파르메니데스... 참...다시 생각해도 빡센 인물이지요?
여러분과 저는 그저 '있는 건 있다, 없는 건 없다' 라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말 하나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인데 파르메니데스는 거기서부터 자신의 논리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며 '니들이 보고 느끼는 세상은 모두 다 가짜다, 니들의 감각이 니들을 속이는 거다, 세상엔 변화도 없고 빈틈도 없다, 세상은 사실 그냥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라는 괴팍한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부었으니 말입니다.
봉변도 참 이런 봉변이 없지요.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
자, 그런데 여러분. 고생한 건 고생한 거고 알아보긴 알아봐야겠지요?
그래서 파르메니데스의 저 정신 나갈 것 같은 이야기가 정말 맞는 이야기인 걸까요? 정말 세상은 그냥 하나의 덩어리고 우린 그냥 우리들의 감각 기관에 속고 있는 것일까요?
:)
그럴 리가요.
파르메니데스의 이야기는 나름 논리적이긴 했지만 과학적으로 옳은 이야기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세상엔 빈 공간이 분명히 있고 변화도 분명히 가능하며 운동도 분명히 일어나거든요.
다만 이제 이걸 기원전 6세기, 저 시대에는 어떻게 반박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이 딱히 반박을 해내지 못했던 것일 뿐이죠. (그리고 파르메니데스의 이야기는 후대로 이어져 플라톤의 이데아론 등에 영향을 주기도 했습니다. 형이상학과 같은 철학의 발전에 나름의 역할을 했던 것이죠.)
그리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아...저거 아닌 거 같은데...암만 그래도 다 가짜라니...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는데....뭘까...파르메니데스 쟤가 떠드는 얘기 중에 어디가 잘못된 걸까...? 세상의 진짜 모습이란 과연 무엇일까..? 등등. 많은 생각을 했죠.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 중에는 조금 많이 비범한 사람이 또 한 명 있었습니다.
파르메니데스로부터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에, 역시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유쾌하고 기이한, 하지만 통찰력 하나만큼은 무시무시했던 한 사람이 있었죠.
'웃는 철학자'라는 귀여운 별명을 갖고 있던 사람,
바로 데모크리토스였습니다.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7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