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07.
너무 계속 고대 그리스의 팔자 좋은 자연철학자 분들 이야기만 하면 또 좀 지루할 수 있겠죠.
그러니 오늘은 비교적 최근 과학자분 이야기를 잠깐 하고 마저 또 이어가 볼까 합니다.
비교적 최근, 그러니까 20세기에는요.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이라는 걸출한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과학자들이 늘 그러하듯, 어렸을 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미국 MIT에서 학사와 석사를, 프린스턴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죠.
또 그는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 영화에서 다뤄진 맨하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과학자 중 한 명이며 1965년에는 노벨물리학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네, 그러니까 뭐 하여간에 매우 뛰어난 탑티어 물리학자였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파인만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재미있게 쓰여있는 책 중에 ‘Genius: The Life and Science of Richard Feynman(천재 :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이란 책이 있는데요.
이 책 안에는 파인만이 스스로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또 그 질문에 스스로 답을 하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그 질문과 답이 참 멋들어지지요.
파인만이 고안해 낸 질문은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어떤 대격변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지식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하나의 문장만 후대에 전달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문장 하나를 전달해야 할 것인가?”
핵전쟁이든 외계인 침공이든 하여튼 간에 세상이 싹 망해서 원시 시대로 돌아가게 생긴 그런 상황이라면 어떤 지식을 가장 최우선으로 남겨야 하겠느냐? 뭐 이런 질문이었죠.
그리고 그에 대한 파인만의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Everything is made of Atoms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
원자,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류가 가장 귀하게 보존해야만 하는 지식이다. 라고 파인만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겁니다.
자, 그럼 여러분, 파인만은 대체 왜?
많고 많은 지식 중에서 하필 ‘원자’라는 지식이 우리 인류에게 가장 귀한 지식이라 말했던 걸까요?
원자라는 게 그토록 어마어마하게 중요한 무언가이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아니면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다는 지식이 알아내기가 겁나게 어려운 지식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걸까요?
제 생각에는요. 아마 둘 다일 겁니다.
물론 과학에는 굉장히 많은 주제가 있고 각각의 분야가 있고 하지만요. 어찌 됐건 현대 과학에서 다루는 대부분의 지식은 ‘원자’라는 개념을 빼놓고는 도저히 이야기가 되질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쓰고 있는 수많은 과학 기술들은 물론이고 어렵긴 드럽게 어려워서 아무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 하는데 은근 영화 소재로는 인기가 좋은 양자역학도, 또 이 광활한 우주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들도.
'원자'라는 지식 없이는 결코 이야기가 되질 못하거든요.
뿐만 아닙니다.
이 원자라는 중요한 지식은 자신의 본모습을 우리 인류에게 결코 쉽게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게임 같은 거 해보신 분들은 아마 아실 겁니다. 어떤 게임이든 간에 거기서 끝내주게 좋은 아이템은 꼭, 마지막 끝판왕을 깨야만 나오곤 하잖아요. 이 원자라는 지식 역시 그랬습니다.
이 지식을 알아내기 위해 찾아 헤맨 인류의 과학적 여정은 정말 험난하기 짝이 없었죠.
원자라는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명백하게 확인된 것은요. 사실 그리 오래전의 일이 아닙니다. 그건 1905년 즈음의 일이었죠.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고작 120년 정도 전에 밝혀진 일이었던 겁니다.
반면, 이 원자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건 꽤나 예전의 일이었죠.
그건 이제 기원전 5세기 즈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대략 2500년 정도 전의 일이었습니다.
원자란 말이 처음 등장한 건 2500년 전, 원자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된 건 120년 전.
그러니까 우리 인류는 무려 2000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이 원자라는 개념을 찾아 이리 헤매고 저리 헤매왔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긴 시간 동안, 나름 각 시대마다 잘 나갔던 위대한 학자들은 이 원자라는 지식 때문에 머리를 싸맨 채 날밤을 지새워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그 수많은 밤은 좌절, 좌절, 그리고 또 좌절.. 원자를 향한 인류의 여정은 그야말로 끝없는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고된 여정에서 좌절을 맛보지 않았던 사람은 오직 딱 한 사람,
고대 그리스의 '웃는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밖에 없었죠.
여기서 어..?! 싶으신 분들은 기억력이 좋으신 분들이군요 :)
네, 일전에 파르메니데스의 폭력적인 이야기 마지막 부분에 살짝 이름만 말씀드렸던 바로 그 데모크리토스입니다.
이 데모크리토스는요.
'세상에 빈 공간 같은 건 없고 만물은 결코 변치 않는다'는 파르메니데스의 무지막지한 이야기에 의문을 품고, 이 폭력적인 이야기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던 사람입니다.
그 아이디어가 바로 Atomos, 우리말로 '원자'였지요.
인류 최초로 원자라는 개념을 떠올리고 제안했던 사람,
바로 데모크리토스였습니다.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8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