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몸 새벽글

'빛을 따라'

새벽 글

by 지영훈

'빛을 따라' 2022년 12월


어둠 속에서 걸었던 기억이 있다. 얼마 전 베트남 북부 고산지대 사파를 여행하였다. 사파에서 밤 9시 30분에 출발하는 SP4 기차를 탔다. 하노이기차역에 도착하니 새벽 5시 30분이었다. 주변에 크고 좋은 호텔이 있으면 보통은 6시부터 투숙객들의 조식을 위한 식당을 오픈하니 들어가서 아침을 먹으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하노이 환기엠 호수 쪽으로 걸을 참이었다.


기차역에 내리니 너무 어두웠고 역 주변에 즐비한 많은 택시의 기사분들이 '택시''택시' 하며 역에서 막 나오는 사람들을 부르고 있었다. 난 어둠 속에서 빛을 따라 환한 곳으로 그냥 걸었다. 큰길을 찾으니 하이바쯩 거리가 나왔고 가로등이 즐비한 그 길로 걸었다.


기대했던 큰 호텔은 보이지 않고 작은 숙소들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을 뿐이었다. 지나치며 좀 걷노라니 베트남의 특유의 국수집들이 문을 연 채 불을 환히 켠 채로 아침 손님들을 맞을 준비들을 하느라고 바쁘다. 한편에서는 국수국물을 큰 들통에 끓이면서 훠이훠이 큰 국자로 돌리고 있고 한편에서는 야채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후덕해 보이시는 아주머니에게 여쭈었다. "저.. 환끼엠 호수 가는 쪽이 어느 방향인가요?" 고생할 뻔했다. 난 반대로 가고 있었다. 하이바쯩 거리에서 걷던 몸의 방향을 180도 돌려 반갑고 다행인 마음으로 가리킨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주머니 말씀에 따르면 걸어서 30분 정도에 걸린다 했으니 일단 걸을만했고 안도되었다. 조금만 더 걸으면 걷는 중에 날이 밝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걷다가 보니 환하게 마당이 밝혀진 예배당이 보였다. 인상적이었다. 지나쳐서 걸었다. 그런데 문득! 나도 모르게 발길이 돌려졌다. 이 2022년 한 해 얼마나 많은 일들이 지나갔던가? 순간 하나님께 고개를 깊이 숙이고 감사를 드리고 싶었다. 발길을 돌려 큰 대문이 열려 있던 예배당에 들어갔다. 마당에 서서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모았던 것 같다. 묵묵히 기도하고 있었다. 스스로 재촉하지 않는 기도는 참 좋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닌 듯한 어느 순간, 나의 오른쪽 어깨에 따스한 손길이 닿았다. 눈을 떠 바라보니 수녀님 한 분이 잊을 수 없는 맑은 눈동자로 눈가 미소로 바라보신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서 기도해도 된다는 듯이 안으로 안내하는 동작을 취하신다. 정말 들어가도 되냐는 엉거주춤하지만 반가운 동작으로 반문하며 난 얼떨결에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압도되었다. 서른 명(나중에 보니 훨씬 넘는) 정도의 수녀님들이 앉아 낮고 맑은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있었다. 사파에서 본 높고 깊은 산골짜기의 하얀 안개들을 헤치고 잔잔히 메아리쳐 퍼지는 허밍 같은 찬양이었다. 나의 가슴이 순간 놀랐다. 가로등으로 불을 밝힌 빛을 따라 어둠 속의 그 길을 걷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곳에 들어서자 영혼의 빛을 따라 걸어온 느낌이었다. 예배당의 맨 뒤에 앉아 그렇게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을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은 채 아름다운 합창의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하였다. 기도하고 기도하다가 아무 생각이나 의지 없이 듣고 있었다. 한 참 후 나를 인도하였던 그 수녀님이 이방인인 내게 다가와서 이제 마치는 시간이라 안내해 주신다. 앞에서 노래하시던 많은 수녀님들이 일어나 돌아 나가며 지나갈 때 난 얼굴을 쳐다볼 수 없었다. 기도하는 듯 고개를 숙인 채로 미동도 없이 느끼고만 있었다.


하이바쯩 거리로 다시 나오니 날이 훤히 밝아 있었다. 상승되어 걷는데 금방 호수에 도착했다. 동이 튼다. 동이 트는 모습이 하노이 호수에 내린다. 고요하고 생동하는 정기가 나의 가슴에 내렸다. 아름다운 새벽이었고 새벽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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