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글
'서로 나눠주는 ' 2022년 11월 13일
나눠 받은 일을 생각해보면 지난 60년의 세월 동안 사실 얼마나 많을까? 시간과 배움과 가치의 나눔 들은 다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성장해 왔다. 좋은 말들을 들어서 마음이 자라고 철학과 사상을 들어서 삶의 방향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지금 생각하면 그렇다. 우리는 주고받은 물질만 늘 많이 기억하는지 모른다. 빚을 진다는 것은 대부분 물질로 생각한다. 그런데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면 정말 빚진 것은 사랑의 행위에 대한 것이다. 서로 주고받아야 하는 데 내가 어리고 채 성장을 하지 않았고 가진 것이 없어 나누어 줄 수 없을 때 난 받기만 했을 것이다. 여기서 '서로' 나눠갖지 못하는 오류가 생긴다. 사실 사회활동을 하며 능력을 키워 소유가 늘어나면 그 소유를 지키기 위하여 애를 쓴다.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첫 번째 나눔은 소유가 될 것이다. 그러나 물질의 나눔은 한계가 있다. 물질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성장하기 까지, 능력을 갖게 되기까지 성장할 때 필요한 것은 그 사람의 생각과 사랑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받은 것의 소중한 가치를 생각하며 무엇을 나눠야 할까? 시작은 물질이지만 다음은 마음, 사랑 등 보이지 않는 가치를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대 만이 아니라 내가 죽어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서다. 신기한 것은 나눔의 대상이나 시기는 내가 사는 이 시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 신비이고 한계를 여는 기적의 일이다. 세상에 한계를 열고 가능성을 국한하지 않으며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것은 결국 나눔에 키가 있는 것 같다. 놀라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나도 그랬다. 내가 보고 감동받고 느낀 것도 내가 사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들로부터가 아니라 15세기이던지 17세기 이던지 아니면 2000년 전의 지혜와 지식과 가르침이기도 하다. 글과 예술에서 영향을 받고 가르침을 받아 내가 성장한 것이 컸다.
왜 글을 쓸까? 그래서 나의 오늘은 나누기 위해 쓰는 것이다. 잉여의 물질은 먹거리의 씨앗으로 심어 더 많은 사람이 먹도록 해야 하고, 잉여의 시간을 만들어 나의 영혼의 토양도 가꾸어야 한다. 서로 나눠주는 것의 의미는 그래서 물질을 훨씬 뛰어넘어야 한다. 시대를 관통해야 한다. 과거에서 내가 받은 것을 미래로 줄 수 있는 유일한(?) 좋은 것이 사상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이 시간들은 그렇게 받은 사상을 통해 문화로 현현하고 가치의 열매를 맺어 사상의 토양에 떨어 드려야 한다. 미래에 전해주기 위하여 나눠줄 수 있는 것들과 나눠주게 될 대상을 생각하니 보이는 것에 제한받지 않는 놀라운 가능성을 인지한다. 한계를 넘는 가능성의 세계라는 새로운 시공간을 만날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벅차다. 깊이 이런 것을 깨달으니 먹고사는 쌀의 나눔이 정신과 배움 과 성장을 이끄는 나눔이 되고 글을 쓰는 영혼의 가꿈이 미래의 아름다운 생명의 가치를 나누는 것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