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몸 새벽글

'너의 빛'

새벽 글

by 지영훈

‘너의 빛’ 2022년 11월 15일

광채를 내는 물질을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 정전이 되어 초에 불을 붙여 어둠이 환해질 때도 그렇고 생일 케이크 초에 불을 붙이면 빛을 내어 모인 마음들이 탄생의 즐거움으로 밝아질 때도 그렇다. 저녁이 되어 어두운 방에 들어갈 때 책상이나 침대 한편에 놓인 스탠드의 스위치를 눌러 분위기 있게 빛이 자아질 때도 그렇다. 빛은 의문 없이 얼마든지 우리 일상 아니 나의 일상에서 나의 행복을 채워주는 기본적인 조건이 되어 있다.


빛을 내는 사랑이 있다. 파장으로 내는 빛이다. 빛이 눈으로 보이지 않으나 느껴지는 빛이다. 누군가 말을 할 때 대화의 결에서 빛이 느껴지고 느껴진다는 것은 주변을 밝혀주는 힘이 있다. 따스해지고 환해진다. 빛이 날 타고 나와 같이 있으면 누군가의 마음이 밝아지고 따뜻해진다고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간혹 그럴 때는 어떤 때였을까? 물질도 어느 공간 속에서 빛을 내는 물체가 되어 있듯이 인간 존재 안에도 어느 공간이 있어 그런 매개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정말? 언제일까?


빛을 내는 이유는 에너지의 잉여에서 온다고 안다. 높은 곳에 위치한 에너지가 낮은 곳으로 갈 때 차이의 결과로 발생되는 파장이 빛이 된다고 하면 에너지의 격차에서 오는 잉여란 어떤 것일 수 있을까? 마음일까? 지식일까? 돈일까? 등등 질문하다가 그것이 흘러야 하는 것은 맞다. 마음이 넉넉한 사람과 너그러운 사람과 같이 있을 때 우리는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그의 에너지의 흘려주는 파장에서 오는 빛을 느꼈기 때문이다.


'너의 빛'

느낄 때가 있다. 그때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대부분 그러한 것도 모든 잉여를 자기 존재에서 내어 빛을 일으키는 파장으로 나를 , 우리를 먹이고 돌보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스승을 따르고 바라며 존경하는 것도 스스로 지식과 베풂이 나라는 낮은 곳으로 흘러 어떤 에너지의 잉여를 내가 받고 받은 파장으로 따뜻함을 느끼고 나의 지식과 재능의 촛농이 되어 나를 밝히도록 해 주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도 몸은 쇠퇴하지만 몸만 빼고는 지식과 경험과 물질의 축적이 살아온 시간만큼 잉여를 키워 나간다고 가정할 때 키워진 잉여가 낮은 데로 흘러 격차의 에너지를 내어 빛을 발하는 가치만큼 큰 가치는 없을 것이다. 나이의 가치를 난 그렇게 해석하고 싶다.


'’너의 빛’을 다양하게 받았다. 많은 시간과 많은 공간에서 받았다. 나라는 존재에 앉을 곳과 누을 곳과 입을 것과 먹을 것 그리고 배울 것 등을 통해 빛을 받아 빛을 낼 수 있도록 나를 봉양해왔다면 이제 이들을 쓰는 나는 나의 잉여를 찾아야만 한다. 잉여가 흘러갈 곳, 격차가 있는 낮은 곳을 찾아 에너지를 일으켜야 한다. 빛의 파장을 내고 대상에게 줌으로 다가가면 빛을 내도록 따스함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발현체의 매개가 되는 것과 존재를 발현하도록 기름이 되어주는 것이 나이와 소유와 재능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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