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몸 새벽글

'사랑하는 사람은'

새벽 글

by 지영훈

'사랑하는 사람은?' 2022년 11월 17일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꼽아 본다면 열 손가락은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보다 적을지도 모른다. '사랑'을 정의하는 조건에 따라서이다. 내가 어느 무인도 섬에서 갇혀 생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면 갖은 수단을 찾아내어서 나를 구해주러 올 만큼 헌신적인 것으로 사랑을 정의한다면 수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아니면 나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여 보고 싶어서 기꺼이 함께 있을 시간을 내거나 밥을 사 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 다면 그보다 많을 것이다. 쓸데없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왜일까?


누가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나는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내가 누군가를 먼저 사랑하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 먼저 전제할 수 있다면 사랑이라는 행위에 대해 재미있게 상상하며 좁혀진 명료해진 답을 얻어 사랑의 행동이 쉬워질 것 같다. 내가 만나는 사람과 만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한 나의 기준을 만드는데 좋을 것 같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굳이 나의 열정과 인생의 남은 귀한 시간을 할애할 이유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먼 산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본다. 질문해 본다.


사랑은 무엇인가?

살아오면서 내가 말했던 어떤 것을 간직하고 있는 누가 있을까? 내가 말했던 것을 간직하는 제자들이 있다고 가정해본다. 어느 제자는 말 한마디를 오래오래 간직하고 어느 제자는 다른 좋은 말들이 그 말을 덮어 잊기도 한다. 내가 우리 부모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받아 그 말을 간직하고 있다면 그 말을 할 때의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철학과 에너지 전부를 인정하고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보고 싶고 그리워하는 사랑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존재의 언어, 영혼의 언어, 경험의 언어를 기억하고 그 말을 지키려고 하든지 아니면 그 말 자체를 사랑하여 간직하고 음미하든지 그런 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일까? 정의를 신께 묻고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신의 생각, 능력, 사랑과 축복의 힘을 받기 위해서 일 것 같다. 말에서 , 글에서 그것이 표출되므로 말이든지 글이든지 그것을 내게 전해주는 누군가의 생각과 마음, 궁극으로 언어란 존재의 총체적인 표출의 전함이다. 그래서 사랑은 간직하고 있는 언어 같다.


물건도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준 것을 간직한다. 자녀가 어릴 적에 그리고 긁적거린 글들의 흔적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가치가 없어도 내게는 가치가 있다. 사랑하므로 가치를 부여받았기에 간직한다. 그것이 부모님의 것이거나 애인의 것이라도 본인에게는 소중하여 간직하는 것이다. 간직할 뿐만 아니라 지키는 사람은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물질이 아닌 것은 그 안에 삶의 어떤 지혜나 정신이 깃든 무엇이라서 이다. 지키기 위하여 간직하는 것이고 간직함으로 지키는 것이다.


'사랑' 누가 나를 사랑하는가? 내가 살면서 표출해온 어떤 것을 간직하고 있고 버리지 않을 뿐 아니라 지키며, 그 안에 어떤 메시지가 지켜져 있다면 사랑이다. 돈은 그 자체로 인격이 없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에 의하여 인격이 부여된다. 그러나 글이나 그림이나 어떤 형태이던지 물건이라 할지라도 마음이 지나가거나 표출된 흔적은 인격을 품고 있다. 누가 나를 사랑하는가? 나는 누구를 사랑하고 있는가? 난 간직하고 지키고 있는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 열 손가락이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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