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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02. 2021

내 결혼식을 축복하겠다는 애인에게

8년 차 애인에게

 

안녕. 나는 당신의 8년 차 애인입니다. 이십대의 대부분을 당신과 함께 보내고 나이의 앞자리를 바꾸었습니다. 이 사랑의 유효기간은 최대 3년이라고 생각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네요. 몇 년 뒤면 ‘10년 차’ 라고 생각하니 조금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는 같이 살지도 않을 것이고 제도로 묶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헤어지는 그 날까지 우리는 서로에게 ‘애인’으로 남겠지요. 가족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과 가족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나요?


 나는 여전히 ‘영원한 사랑’이라는 말에 어깨를 떠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사랑이라니. 오래된 영화를 틀어놓은 스크린처럼 빛 바래고 어색하게 느껴지거든요. 당신은 반신반의하겠지요. 반 정도 믿는 것은 내가 습관처럼 “네 인생 네 거. 내 인생 내 거.”라고 말하기 때문일 것이고, 반 정도 의심하는 것은 지난 7년 동안 당신에게 “싫다.”라고 말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모든 것을 긍정합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심통 부리는 당신의 언어, 언제나 잘 다려 입은 옷에 깨끗한 향이 나는 당신의 냄새, 누구도 구속하고 싶지 않다는 당신의 사고를 좋아합니다.


 그러고보니 영원함을 약속하지 않은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매번 배신자 취급 받으며 사랑의 충성을 검열 받다 보니 깜빡 잊었습니다. 당신은 내 결혼식을 축복해주겠다고 말했잖아요. 비혼을 다짐한 사람에게 결혼 의례를 당연히 여기는 것도 이상하지만, 애인의 결혼을 축복해주겠다는 것은 더 이상하지 않나요? 하지만 나는 그 점이 재미있습니다. 3년 차 애인이었다면 “나를 사랑하지 않는고야!?” 라며 대판소판 했겠지만, 8년 차 애인에게는 그 말이 체에 걸려져서 사랑을 달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전용 번역기가 된 셈이죠.


 우리는 우리끼리만 우리입니다. 당신이 출근을 하고 바쁜 오전 시간과 꿀 같은 점심을 먹고 기진맥진해서 퇴근을 할 때, 내가 느지막이 일어나서 뒹굴다가 지금처럼 글을 쓰고 책을 볼 때는 우리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이 먹었을 점심이 궁금해지면, 당신이 내가 좋아하는 케이크 집을 발견할 때면 우리로 돌아옵니다. 그 순간에는 나와 당신 가슴에 이어져있는 빨간 실이 여전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 간 세월에 반짝이지 않지만 보기 좋게 손 때가 탄 인연처럼요.


 어느 시인의 글처럼, 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숱한 연인들처럼 바스러지는 사랑을 잡아보려고 노력하는 때도 오겠지요. 그 즈음이면 나도 당신도 지금과는 다른 사람일 것입니다.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사고로 시작한 사랑이었다면 끝날 때는 천천히 브레이크를 밟고 싶습니다. 그때까지 잘 지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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