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편지 Aug 15. 2021

젊은 불꽃

다시 쓰는 안데르센 세계 명작 :: <성냥팔이 소녀>


단톡방 알림이 끊임없이 울린다. 아침부터 오던 톡은 안 본 사이 200개가 넘었다.


[야 이거 봤어?]


‘성냥팔이녀’ 라는 제목의 동영상이었다. 버스정류장 옆에서 추위에 떨며 쪼그려 앉아있는 한 여자를 길 건너편에서 찍은 듯했다. 한겨울 복장에 맞지 않게 얇은 가디건과 풍성한 치마를 입고 있다. 여자 앞에는 ‘성냥 사세요’ 종이가 적힌 가판대가 있다. 동영상은 여자의 얼굴을 확대하며 끝이 난다. 2시간 전에 올린 동영상의 댓글이 벌써 천 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현대판 성냥팔이네ㅋㅋㅋㅋㅋㅋㅋ]

[주작 아님? 성냥을 누가 팜? 것도 한겨울에 밖에서;;]

[이런 말 그렇지만…굉장히 미인이네요…]

[정부는 뭐합니까!!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이들을 구해야 합니다!!!]


동영상은 퍼질 데로 퍼져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여자의 신상을 궁금해하거나 정부를 비난하는 댓글을 짜깁기 한 기사였다. 공통점은 ‘ㅇㅇ동 성냥팔이녀’ 라는 기사 제목이었다.


동영상 속 여자를 향한 관심은 오래갔다. 인터넷 국민청원에 복지 정책 개편에 대한 글이 올라왔고 동의 수도 꽤 늘고 있었다.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여자에 대해서 얘기하기 바빴다. 여자의 얼굴, 여자의 몸, 여자의 옷에 대해서 평가하며 단숨에 인기 게시물에 올랐다. 간간이 동영상의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별 다른 공감을 얻지 못했다.


어느 날 동영상이 삭제됐다. 채널은 남아있지만 동영상은 사라졌다. 여자에 관심이 시들해졌던 사람들은 삭제된 이유에 대해서 추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도 오래가지 않았다. ‘성냥팔이녀’를 대상으로 한 밈만 떠돌았다.


2주 후 다시 ‘성냥팔이녀’가 다시 들끓기 시작한다. 동영상이 삭제되고 텅 비었던 채널에 새로운 동영상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썸네일에 있는 여자는 분명 성냥팔이녀였다. 하지만 얼굴만 같을 뿐 머리와 옷이 완전히 다르다. 의자에 앉아서 누군가의 질문에 대답하는 여자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준다. 여러 명을 닮은 얼굴에 묘한 이질감이 든다. 여자는 자신을 버추얼 인플루언서라고 소개한다.


그녀는 가상의 인물이었다. 한 회사에서 마케팅을 위해 만들었고 채널명도 회사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조회수는 금세 100만을 넘겼고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노이즈 마케팅을 한 회사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젊고 아름다운 가상의 여성에게 쏠리는 관심만큼은 아니었다.


이제는 [성냥팔이녀의 실체]로 각종 기사와 SNS 소식이 쏟아지기 시작하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윤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