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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편지 Aug 15. 2021

조직의 논리가 죽은 사람

바로 접니다


 어머니의 폰 케이스에는 여러 명함이 있다. 우리집 인테리어 해준 사장님, 간고등어가 기가 막히는 생선집 사장님 그리고 최근에 방문한 철학관 사장님 명함이 꽂혀있다. 며칠 전 어머니는 새로운 곳에 갔다. 철학관이 아니라 신당이었고 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어머니 옆에 딱 붙어서 “나는 뭐래? 좋대?” 라고 물었고, 늘 그렇듯이 어머니는 “너 그냥 내비두란다.” 라는 말만 했다. 꽤 잘 보더라는 말과 함께. 미신 마니아는 어머니가 자리를 비우자 재빠르게 명함에서 전화번호를 외웠다. 이럴 때만 행동력이 좋은 나는 집에서 1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신점을 보러 갔다.


 그곳은 큰 시장 골목 안에 있었다. 제일 가까운 버스 정류장에서 또 15분을 걸어서 도착했다. 덥고 습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해보니 불이 꺼져있고 사람이 없었다. 당황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단아한 분위기의 사장님이 “왔어요?” 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한쪽 벽에 신을 모시는 곳이 있었고 사장님이 간단한 절을 하길래 나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그분은 태어난 시간을 묻지 않았다.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은 신이 말해주는 대로 얘기할 뿐이고 생년월일도 형식적으로 물어보는 것이라고 했다. 철학관만 다니던 나는 갑자기 영험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어딜 가도 회사를 다닐 팔자가 아니라는 말을 듣는다. 가장 기억에 남은 말은 “조직의 논리가 죽은 사람이다.”. 너무나 비장한 말이 아닌가. 부모님이 내 사주를 봐도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내게 “느그 아부지랑 비슷하단다. 어디 정착을 못한다네.” 라며 나와 아버지를 동시에 보내버렸고, 아버지는 뭔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니는 사람을 많이 만나야 된다. 고이면 썩는대이.” 라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분도 그랬다. 나를 처음 봤을 때 내 입에서 무언가가 줄줄 나오는 것 같다고 했다. 말로 먹고살아야 한다고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직업은 안 맞는다고 했다. 어쩐지 회사에서 영혼이 갉아 먹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니. 나는 그때도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다. 부동산 일은 어떠냐고 묻자 내게는 칼이 없다고 했다. 부동산 일을 하려면 기가 세야 하기 때문에 칼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부채를 들고 있다고. 사실 아직도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했다. 어머니한테 얘기하니 “그런 게 있다.” 라며 알려주지 않았다. 


 진로에 대해서 물어볼 때마다 내 단골 질문은 두 가지다. “퇴사해서 뭐 먹고 살죠?”와 “부동산은 어때요?” 이다. 그럼 단골 대답이 나온다. “회사 못 다닐 팔자라서 그래.”와 “부동산도 괜찮지. 사람 만나고 말하는 직업이니까. 근데 요즘 경기가 어려워서…” 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글 쓰는 일을 물어본다. “취미로 해.” 라는 답변 외에 다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퇴사하고 지금 이렇게 취미로 하나보다. 사주를 볼 때마다 진로에 대해서 명확한 적이 없었다. 이왕 내 인생을 남의 말에 의존하려고 갔으면 ‘이거 하면 돈 많이 번다’ 라던가 ‘저거 하면 이름 날린다’ 정도는 기대하는데 그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돈 내고 사주를 보러 갔는데 애매한 취업 상담을 받은 느낌이었다.


 내가 타고나기를 뚜렷한 길이 없어서일까? 친구는 온 세상을 밝히는 환한 사주에 그릇이 크기 때문에 취업하면 대기업, 공부하면 교수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해에 대기업에 입사했다. 내가 사주를 정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팔자 따라 인생이 정해진다면 너무 억울하다. 무엇보다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인데 말이다. 문송하다고 조롱받아도 인문학 전공을 한 것은 내가 뼛속까지 문과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경력이 될 줄 알면서도 입사한 것은 돈이 급했기 때문이고, 일기라도 계속 썼던 이유는 글이 나를 위로했기 때문이다. 선택은 내가 했다. 확신이 있었던 적은 없다. 수천 번 수만 번 휘청거렸다. 바닥이 없는 길은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래도 갔다. 걷지 않으면 멈춰서는 수밖에 없었다. 삶은 뒤로 돌아가는 길 따위는 없다. 불안정한 하루들에 울고 싶었지만 이 깍 깨물고 걸었다. 어릴 적 상상했던 것처럼 남들에게 인정받고 일하며 내 명의의 집으로 돌아가는 날은 오지 않았다. 집안일에 밤을 꼴딱 새워도 멀쩡한 척 출근을 했고, 회사에서 싹수없다는 소리를 들으면 ‘뿡이다.’ 라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퇴사를 하고 글을 쓴다. 내 뜻대로도 되지 않는 게 인생인데 사주 뜻대로 됐으면 난 벌써 창업해서 사장님이 됐어야 한다. 사주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쓴 값이다. 어떤 날은 3만원, 좀 비싸면 5만원. 모아 보면 좀 많긴 하지만 그만큼 내가 흔들렸다는 뜻이겠지. 우리 모두 흔들리며 피는 꽃인데 돈 좀 쓰면 어떠랴. 사주처럼 잘 될 날을 생각하면서 또 출근을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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