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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올뺌씨 Apr 25. 2022

외상주는 커피트럭 아저씨

아라뱃길 주차장 공터에서 만난 바리스타 아저씨

가끔 세상이 차갑다고 느낄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친인척 사이도 아니고, 친구나 지인 관계도 아닌 오다가다 사장과 손님으로 한두 번 본 사이임에도 그때 받은 충격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예전에 경인 아라뱃길에 바람 쐬러 나간 일이 있었다.



지금은 아라뱃길 주변에 자전거 타는 사람들과 스낵카들로 제법 번잡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지만 예전에만 해도 주말을 제외하고는 나들이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끔 가족 나들이를 나와 천막을 치고 있는 가족들이 몇몇 보였기에 여기가 공원이구나 하는 걸 알 수 있었을 정도니까.


날은 맑았으나 우리나라 무더위가 그렇듯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습한 기운에 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린다. 금방 목이 타오르기 시작했고 마실 것이 필요했다.  


‘아…, 목마르다. 뒈지게 목마르다~’



주변을 둘러보니 주차장 공터에 작은 자동차 한 대가 보였다.  


누가 보더라도 아, 여기서는 커피를 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를 머금으며 푸드트럭으로 다가가서 커피를 주문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이 간 친구는 아이스 카페모카를 주문했다.


이후 계산을 하려고 자신만만하게 지갑을 열었는데….  



없다.


없네? 이게 왜 없지?


지갑에 현금이 없는 것이다.


오 마이 갓!!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안 그래도 더운 날씨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주인아저씨가 커피를 내리기 전에 재빠르게 주문을 취소하려고 했다.  


"사장님, 정말 죄송한데요. 저희가 현금이 없어서 다음에 다시 올게요. 혹시 카드는 안되시죠?"    


장사하는 사람 입장에는 짜증 날법한 상황이라 한 소리 들을 생각을 하고 쭈뼛거리고 있었는데 예상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카드기는 저희가 없구요. 대신에 외상은 드릴 수 있어요."


으잉?


잠시 귀를 의심했다. 동네 상점가도 아니고 이런 허허벌판 공터의 푸드트럭에서 외상이라굽쇼?


여기는 단골 위주로 상대하는 동네 커피숍이 아니다. 공원에 바람이나 쐴 겸 찾아오는 뜨내기 상대로 장사하는 곳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외상을 준다는 말인가0?



커피 트럭 사장님은 짜증한톨 섞이지 않은 얼굴로 미소까지 띠면서 너그럽게 말하고 있었다.


주문 취소가 그리 달가운 상황은 아닐뿐더러 장사하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당장 벌어들이는 매출이 줄어드는 게 된다. 안 그래도 휑한 구역에서 돈 6,000원이 주머니에 꽂히기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날개를 달고 달아나 버린 꼴이 되니 많이 아쉽고 짜증도 날 법한 상황이다.


 사장님이 이렇게 말하니 되려 우리가 미안해지는 터가 아니라고 다음에 제대로 돈 들고 와서 사 먹겠다고 사양하게 되더라….


 극구 사양함에도 사장님이 괜찮다며 사양하지 말라며 커피 두 잔을 뽑아서 손에 쥐여주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외상값 갚으려고 일부러 급하게 오실 필요 없어요"


"손님이 외상값을 오래 있다가 줄수록 저는 그 기간만큼 좋은 일을 했다는 기분이 들어서 저는 행복해요."


때때로 외상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릴 때가 있는데 뜬금없이 손님이 다가와서 "전에 커피 외상값이요~" 하면서 돈을 건네면 자신도 잊고 있던 돈을 받은 거라 꽁돈이 생긴 기분이란다.


이것이 바로 무한 긍정이란 거구나


갈증에 목을 축일 시원한 커피 한잔하러 왔다가 마음의 갈증을 채워가는 기분이었다.



커피를 받아서 근처에 앉아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있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커피 한잔을 뽑아가다 발을 헛디뎌서 커피를 엎지르게 되었다.


아저씨는 커피 한잔 새로 뽑아준다며 냉큼 뽑아주셨고, 커피를 엎지른 아주머니는 됐다고 자기 실수인지라 커피값을 계산하겠다며 지갑을 열었다.


결국, 이 공방 아닌 공방은 주인아저씨의 강력한 공격에 패배한 아주머니께서 새 커피를 받아들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일행을 향해 걸어가며 끝이 났다.


그로부터 3일 뒤 조금 이른 퇴근을 하던 길에 외상값만 갚기는 미안해서 커피 한 잔을 더 시켜 먹고 왔었다.


사람에 치여 서글퍼지는 어느 날.


어쩌면 다시는 경험하기 힘들 것 같은 기억이 떠올랐다.



아라뱃길 커피트럭 사장님은 지금도 웃으며 사는 하루 하루를 보내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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