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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May 07. 2023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도영의 프롤로그


도영이 쓴 도영


나는 편지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생일, 크리스마스, 새해... 특별한 날이면 특별한 날이라는 이유로, 그런 날이 아닐 때는 친구와 친해진 기념으로, 재밌는 일을 말해주고 싶어서,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려고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을 붙여대며 편지를 썼다. 운이 좋게도 답장을 잘해주던 친구들을 만났기에 편지들은 점점 쌓이기 시작했고, 중학생 무렵에는 편지들에게 책상 서랍장 하나를 통째로 내주어야 했다. 내가 쓴 편지의 내용은 수업 듣기 싫다던가 오늘 급식 먹지 말고 나가서 먹자든가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뤘지만 때로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힘들었던 친구 관계나 남몰래 꿈꾸기 시작한 진로에 대한 이야기 같은 진지한 이야기들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날이면 어쩐지 편지를 주고받은 친구와 훨씬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들뜬 기분으로 잠에 들곤 했었다.


그래서일까. 성인이 된 후 누군가와 편지를 주고받는 일들은 자연스레 줄어들었지만 내게 편지는 언제나 특별한 무언가였다. 답장을 받을 수 없을 것 같더라도 나는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은 날이면 여전히 편지를 썼다.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을 담아 꾹꾹 눌러쓰기도 하고 복잡한 생각을 따라 그냥 펜이 가는 대로 하염없이 쓰기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향하는 글이기 때문일까. 나는 늘 일기장 앞에서보다 편지지 앞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었다.


편지지 앞에서만 튀어나오는 감춰둔 속마음은 주로 엄마에 관한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엄마는 내 인생의 화두였으니까. 부모로서의 엄마. 한 명의 여성으로서의 엄마. 엄마가 내게 했던 모든 행동과 말들. 엄마와 나의 관계. 나는 엄마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그건 나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했다.


그래서 매주 편지를 쓰기로 했을 때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고 말했던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가장 솔직해질 수 있는 형식 속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씩 풀어내다 보면 엉킨 실타래가 풀어지고 다시 예쁜 편물이 되듯, 엉킬 대로 엉켜버린 내 마음도 반듯한 모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마침내 엄마를 그리고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며 나는 엄마에 관한 편지를 쓰려고 한다.





도영이 쓴 지은


양도영과 양지은. 나와 그녀의 필명은 서로의 이름에 엄마의 성을 붙여 만들었다. 그렇다. 지은은 나의 이종사촌으로 나의 엄마와 그녀의 엄마는 자매지간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어쨌든 엄마는 자매들과 꽤나 돈독한 사이인 관계로 지은과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만날 일이 많았다. 우리는 방학이나 명절에 만나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로 밤을 새우며 친목을 다졌고 화제는 주로 다른 또래 친구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불행한 가정사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상황이 악화되면서 우리는 자세한 이야기를 묻기보다 엄마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고 보다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기를 선택했다. 괜히 캐물어 서로를 상처 주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굳이 듣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에게는 때로 지은에게 괜찮냐고 묻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그녀가 괜찮은지가 궁금해서는 아니었다. 그저 위로하고 싶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나 또한 괜찮지 않다고. 그래서 나는 종종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녀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와 나의 힘들었던 마음을 담아서 같이 힘내자는 말을 꾹꾹 눌러썼다. 그런데 사실 나는 여태껏 단 한 통의 편지도 지은에게 주지 않았다. 간단한 이유였다. 겹겹이 쌓인 상처가 단 한 통의 편지로 치유되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상황은 나아졌고 우리는 서른 언저리의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모든 일들을 조금 떨어져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지금, 나는 드디어 지은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한다. 그녀와 나의 인생의 중심이었던 엄마에 관한 편지를 말이다. 폭풍처럼 몰아쳤던 일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바빴던 시간 속에서 휩쓸려 떠밀려가 버리지 않기 위해 중심을 다잡던 날들. 그날들의 내가 느꼈던 마음을 말하며 그날들의 지은에게 너도 같은 것을 느꼈냐고 이제와 물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제라도 네가 괜찮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다.


나와 같은 지은에게.


이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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