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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May 28. 2023

엄마를 그만 미워하고 싶어.

지은의 편지 1

도영 언니에게.



언니, 그거 알아? 최근에 내가 상담을 받게 된 건, 언니의 영향도 있다는 것을. 언니가 먼저 걸어본 길을 안심하고 걸었던 어린 날의 행동 방식이 아직 내게 남아있나 봐.


우리는 왜 엄마를 원망하기 힘들었을까?


나 역시 상담의 주된 이야기는 엄마에 관한 것이었어. 알코올에 빠져 엄마에게 기생하던 아빠. 술에 취하면 손버릇이 나빠지고 어린 딸의 저금통을 터는 빵점짜리 남편이었지만 엄마는 희망을 놓지 못했어. 그런 엄마가 날로 피폐해지는 것은 당연했지. 엄마의 어린 나를 앉혀두고 숙제를 내줬어. 아빠에게 술 그만 드시고 내일은 일하시라고 말하렴. 아빠에게 엄마 생활비 좀 달라고 얘기하렴. 나는 완벽히 임무를 완수하는 딸이 되려 했지만, 숙제를 해내는 것으로는 엄마의 눈물을 멈출 순 없더라. 나도 언니와 같이, 엄마가 이토록 힘들어하는 것은 아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느 순간 나는 화목한 세 가족을 애써 상상하기보다 엄마와 나, 둘이 헤쳐 나가는 미래가 현실적이란 결론을 내렸어. 가족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지 않는 아빠를 ‘우리 가족’에 끼워주고 싶지 않았거든.


그래서 벌을 받았나 봐. 우리의 미래에 아빠를 끼워주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이 되었을지도 몰라.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언니가 덤덤했던 내 표정을 봤다고 했었잖아. 그 무렵, 아마 엄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봐. 이후 여러 해 동안, 엄마는 아빠에 대한 죄책감을 떨치지 못했어. ‘엄마가 아빠에게 더 잘해줄 걸 그랬는데‘와 같은 푸념이 반복됐어. 엄마의 마음의 병은 점점 깊어지고, 자신의 화를 이기지 못해 방문에 칼을 난도질하거나 살림살이를 부수는 날이 잦아졌어. 그렇지만 나는 우리 가족의 모든 원흉이 아빠라고 생각했기에, 엄마를 탓하기 힘들었어. 그저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다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져버린 엄마를 보면 속상함에 눈물이 흘렀어.


학교에만 있고 싶었어. 하굣길을 걷다 보면, 오늘은 어떤 지옥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상상하게 됐으니까. 집에 도착하면 바닥에는 여지없이 그릇이 깨져있고, 허공을 바라보며 집 안 어딘가에 CCTV가 있다 아파트가 떠나가라 소리치는 엄마를 보면 지긋지긋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울분을 멈추기 힘들었을 때는 엄마와 싸우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지치는 날이 오더라. 언니가 이모의 슬픔에 물들 듯, 나 역시 엄마의 슬픔에 물 들어갔어. 사실은 슬픔에 물드는 것 그 이상이 될까 봐 무서웠어. 엄마가 조금만 언성을 높이거나, 발소리를 크게 내거나, 문을 조금만 세게 닫아도 스트레스로 잠 못 이루는 내가 엄마와 함께 미쳐가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점차 엄마를 아빠보다 더 원망하게 되었어.



웃기지. 내가 어렸을 때는 아빠를 원망하면서도 자책하는 엄마가 미련해 보였어. 굴레에 스스로를 가둬두고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어느샌가 나도 엄마를 원망하면서도 자책하고 있더라. 같은 굴레에 빠지게 된 거야. ‘나를 힘들게 한 엄마를 미워하는 것이 잘못은 아니잖아.’ 그렇게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가슴에는 무거운 죄책감이 쌓여갔어. 나는 그렇게 어딘가 짓눌려진 채 커버린 것 같아. 의사 선생님께선 내게 엄마로 인한 마음의 응어리가 있다고 말씀하셨어. 하지만 선생님은 어떤 해결책을 내려주시기보다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셨기 때문에, 상담이 끝나면 멍하니 집에 앉아 풀어지지 않는 응어리를 긁어내고 싶어 답답했어. 울컥 눈물이 나 주체할 수 없는 날도 종종 있었는데, 그런 날은 이렇게 펑펑 우는 내가 부끄러워 헛웃음도 나더라. 그래도 감정을 들춰보려 노력했던 나날은 내게 나름 도움이 되었어. 엄마를 떠올리면 이내 구겨지는 내 마음을, 잘 펴서 읽어보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거든.


언니, 나는 최근 엄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천천히 해독해보고 있어. 아직 다 읽어 내리지 못했지만, 상투적이고 낙천적인 사실을 발견했어. 내가 아직도 엄마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딸인 내가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이다니. 엄마에 대한 내 애정을 확신하기 힘들었던 걸까? 아니면, 원망과 애정은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라 착각했던 걸까? 어떤 이에게는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나에게 오래도록 풀리지 않았던 명제였어. 그 해답을 조금이나마 찾은 것 같아 후련해.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자책하는 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걸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어. 하지만 웃기게도, 나를 괴롭게 한 시간을 잊을 수 없기에 여전히 엄마를 미워해. 사랑한다는 엄마의 말이 와닿지 않아 이내 상실감이 되었던 과거가, 미래로 다시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러면 나는 같은 고민으로 또다시 언니에게 편지를 쓸지 모르겠다.


엄마를 그만 미워하고 싶어. 

하지만 아직 엄마가 밉다.



지은.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도영의 편지 1: 엄마를 원망해도 되나요? 읽으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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