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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도영 양지은 May 21. 2023

엄마를 원망해도 되나요?

도영의 편지 1

지은에게



엄마를 원망해도 되나요?


5회 차 상담이 끝나고 내가 상담 선생님에게 물었던 질문이었어. 엄마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참하고 나서도 나는 통 그 힘듦이 엄마 탓으로 느껴지지 않았거든. 그저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내가 잘못된 딸 같았어.


엄마와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게 어렵고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나면 한참을 울던 날들이 반복됐음에도 엄마를 원망할 수 없었던 이유는 이 모든 사태의 잘못한 사람이 명백하다는 거였어. 우리 집에 찾아왔던 불행은 우연히 찾아온 사고나 천재가 아니었고 불행의 근원에는 명확한 범인이 존재했지. 아빠였어.


아빠는 우리 집의 가해자였어. 누가 봐도 명백했지. 아빠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를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났어. 막 아홉 살이 된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 퇴원하던 날, 나를 데리러 온 엄마가 무슨 말인지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말들로 아빠와 바람피운 여자를 욕하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 중고등학교 내내 세 아이를 키우던 엄마에게 당신이 하는 게 뭐냐고 소리 지르던 아빠의 목소리도 아직 귓가에 들리는 것 같아. 그렇게 엄마아빠가 온 집안에 울릴 만큼 큰소리로 싸우고 난 다음 날이면 엄마는 울어서 빨개진 얼굴과 잠긴 목소리로 내게 아빠를 욕했었지.


그러니 내가 어떻게 엄마를 원망할 수 있었겠어? 엄마가 저렇게 힘들어하는 것도 다 아빠 때문인 걸. 피해자인 엄마에게 엄마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드니 더 이상 아빠 이야기도 엄마가 힘든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어떻게 이야기하겠어. 엄마의 힘든 소리를 더 받아주지 못하는 내가 너무 못되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어. 오랜 세월 동안 내게 엄마는 상처받아 마음이 아픈 사람이었고 그 누구보다 힘든 피해자였어. 그래서 엄마에게 차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거야. 아빠가 우릴 버리고 떠나서 나도 너무 상처받았다고, 학교에서 힘든 일이 있었다고, 때로는 엄마의 아픔을 듣는 게 나도 힘에 부친다고 그래서 가끔은 엄마가 내 이야기도 묻고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이야. 그런 말들을 속으로 삼키면서 오랜 시간을 엄마의 슬픔을 들으며 보냈어. 엄마의 슬픔에 젖어 내 일상이 같이 물들어가도 엄마를 원망하지 못한 채 말이야.



그렇게 곪다 보니 어느새 아빠만큼이나 엄마가 불편해져 버렸더라. 때로는 아빠보다도 더. 분명 내가 미워해야 할 사람은 아빠인데, 엄마가 미운 내가 너무 못된 자식 같았어. 그래서 선생님께 물었지.


(딸인 제가) (피해자인) 엄마를 원망해도 되나요?


너무 당연한 얼굴로 선생님이 그러시더라. 된다고. 엄마를 원망하라고. 소리 지르고 싶으면 소리 지르고 대들고 싶으면 대들라고. 엄마가 내게 잘못하셨다고.


그리고 그렇게 화내다 보면 언젠가 엄마를 대하는 게 다시 편해지는 날이 올 거라고.


이 세상의 모든 딸들은 엄마를 두 번 생각해. 사랑하는 딸로서 엄마를 바라보고 다시 한 명의 여자로서 엄마를 이해하지. 그래서 아빠라는 남자에게서 받은 엄마라는 여자의 상처를 나는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 같아. 하지만 지은아,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에서 결정지어진 엄마의 역할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엄마가 나에게도 피해자는 아니라는 걸 나는 정말 나중에 알았어.


선생님의 말을 듣고 한참을 걷고 또 걸으며 생각해 봤어. 돌이켜보니 아빠와의 관계에서 상처받은 불쌍한 엄마는 내게 가해자였더라. 엄마는 부모의 이혼으로 힘든 내 마음을 묻고 살피지 않았고 때로는 아빠와 같은 성을 가진 아이라며 원망했지. 내 앞에서 죽고 싶다고 뛰어내릴 거라고 이야기하던 엄마는 분명 내게 잘못한 거였고 차를 미친 듯이 몰며 다 같이 죽어버리자고 소리 지르던 엄마는 내게 가해자였어. 그래서 나는 그때 나도 너무 힘들었다고 같이 소리 지르고 울다 보면 언젠가 엄마를 대하는 게 편해지는 날이 올 거라는 선생님의 말을 믿고 따르기로 결심했지. 그리고 화를 냈어. 몇 달을 넘도록 오랫동안.


어떻게 됐냐고? 모든 일은 마음 같지 않잖아. 나는 내가 화를 내면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고 우리의 사이가 다시 좋아질 줄 알았는데. 있지, 엄마를 원망하는 것도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로 엄마의 사과를 받게 되고 홀가분하게 엄마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쉽게 되지 않더라.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착한 딸의 변화가 엄마는 달갑지 않았겠지. 가끔은 괜히 솔직해지길 선택했나 후회하기도 했어. 이러다가 엄마와의 관계가 영영 돌이킬 수 없게 될까 봐 두렵기도 했고. 그래도 화내길 잘했다고 생각해. 조금은 속이 풀렸거든. 내 상상 같은 사과는 아니었지만 엄마의 사과 또한 받았지. 엄마를 볼 때마다 밀려왔던 터져버릴 것 같던 마음도 지금으로서는 잠잠해진 듯해. 그래서 이젠 “엄마를 원망해도 되나요?”라는 내가 던진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 또한 같아.


네, 마음껏 화내세요.



도영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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