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도영 양지은 Jun 11. 2023

착각할 만한 날이, 찾아오기를

지은의 편지 2

보고 싶은 언니에게



한국은 나날이 따뜻해지고 있어. 언니의 SNS에서 벚꽃 사진을 보고 나도 꽃을 보려 산책을 했어. 주말이 지나면 곧 비가 내리고 벚꽃이 진다는 예보를 들었어. 벚꽃을 붙잡고 싶지만 그럴 수 없기에 만개한 꽃을 마지막으로 즐기는 것으로 만족하려 해. 그래도 이 아름다움이 조금이나마 오래갔으면 좋겠다.


지난달에는 엄마와 연락을 자주 했어. 숙모의 부고 소식 이후, 엄마는 큰삼촌댁에 자주 들러 청소를 해주는 모양이야. 큰삼촌 딸 예진이는 벌써 중학교에 들어가. 내가 졸업한 중학교에 입학하게 됐어. 엄마는 숙모가 돌아가신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메우고 싶어 해. 그렇기에 고된 식당 일이 끝나고도 바로 큰삼촌댁으로 향하는 거겠지. 하지만 지난번 큰삼촌댁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니, 엄마가 그 집에 자주 가는 이유를 한 가지 더 알게 됐어. 엄마는 예진이를 보며 나의 청소년기를 떠올리는 듯했어. 삼촌댁 거실에 누워 언제 이렇게 커버렸냐는 엄마를 보면서, 예진이와 그때의 나를 같이 보고 있구나 생각했거든. 나는 “그때 나한테 못 해준 대신 챙겨줘.”라 대답했지만, 중학생의 자아가 질투심을 곤두세우는 것을 느꼈어. 나보다 훨씬 어린 동생한테 갖는 질투심이라니. 참 못났다고 생각하면서 깨달았어. 이건 현재의 내가 아니라 가슴 어딘가 웅크리고 있는 어린 나의 얄궂음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을.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들 하잖아. 언니의 꿈 이야기를 읽는데 나는 왜 언니의 감정이 무언지 알 것 같은지. 비슷한 감정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우리가 안쓰러웠어. 지난 해 겨울, 내 자취방에서 나눴던 대화 기억해? 어쩌면 우리 엄마보다 내가 더 엄마를 사랑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지만, 그 안에는 씁쓸함이 있었지. 삶의 굴곡에 길을 잃고 엄마를 향한 내 사랑은 잘 수신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럴 때마다 늘 무력했지. 날아가 버린 그림을 보며 속상해하던 꿈속의 언니처럼.


가끔 나는 우리가 얼마나 여린 사람들인가에 대해 생각해. 사회에선 어른의 가면을 쓰고 행동하다가도 엄마를 얘기할 때면 그런대로 잘 숨겼을 감정을 자꾸 드러내잖아. 최근에는 엄마에 관한 이런 감정을 잘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 오만이었나 봐. 이건 꼭 늪 같아. 엄마와 가까워질수록 내 마음은 자꾸만 진탕되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힘들어지거든. 그래서 나의 평온을 무너뜨리는 엄마가 미웠던 것도 같아.


언니, 왜 그런 거 있잖아. 어느 날은 엄마가 내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 같다가도, 어느 날은 가장 큰 걸림돌같이 생각되는 줏대 없는 마음. 엄마를 향한 양가감정. 이모가 불행에 갇혀 언니를 돌볼 여력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 엄마 역시 같았으니까.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엄마의 기분처럼 엄마를 향한 내 감정도 달라지곤 했어. 우리의 엄마들은 현실에 치여 사랑을 나눠주는 방법을 잊고 있었겠지. 엄마가 내게 물려준 걸림돌은 패배주의였어. 그 마음은 가난한 환경에 상관없이 나를 물들였어. 그래서 나는 언니가 알던 것처럼 가끔 엄마의 번호를 차단하곤 했어. 그럼 한동안은 엄마에 대한 원망을 멈추고 일상의 조용한 평화를 찾을 수 있었으니까.


엄마에 대한 편지를 쓰면서 느꼈어. 안 좋은 기억은 상대적으로 더 오래간다는 것을. 좋았던 기억은 멀어져가는데, 나쁜 기억은 아직 파편처럼 박혀있어. 심지어 상처들은 사진처럼 그 모습 그대로 기억나기보단 일그러지는 그림처럼 갈수록 더 추잡해지는 것 같아. 분명 엄마와 나 사이에도 행복에 가까운 추억들이 있을 텐데 말이야.



그 시절 우리에게 조금만 더 행운이 있었다면 달랐을까.


언니가 쓴 구절을 되뇌어. 엄마는 행운과 선택의 순간을 지금까지 매 순간 상상하고 있는 것 같아. 그랬다면 어땠을까-그 시절 우리를 되뇌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건 엄마의 취미거든. 꼭 인터넷에 유행하는 회귀형 소설처럼 말이야. 그런 엄마를 보며 엄마의 패배주의를 지긋지긋해하기도, 엄마를 구제할 수 없는 나의 무력함에 빠지기도 했어. 그것이 엄마가 사랑을 말하는 법이라는 걸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어. 내가 그 시절 우리의 행운을 상상하는 것처럼. 엄마도 꿈꿨던 거겠지.


엄마와 나는 평생 치유되지 못할 거야. 다만 엄마를 떠올리며 불쑥 차올랐던 울분과 짜증, 이런저런 부정적인 감정이 나를 천천히 벗어나고 있는 것은 분명해. 상투적인 말이지만, 이렇게 엄마를 되뇌다 보면 분명 나아지는 점이 있겠지. 언니의 말대로 구김 하나 없는 우리를 상상하다 보면 상처와 원망은 조금 옅어질지 모르니까. 만개한 벚꽃을 보며 행복했던 오늘만은, 다음으로 나아갈 우리와 엄마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


서로에 대한 원망을 치유했다 착각할 만한 날이, 언젠가 우리에게 찾아오기를.



봄의 한창에서, 지은이가





외사촌 관계인 양도영과 양지은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엄마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습니다. 양도영 양지은의 브런치와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매거진을 구독하시고 저희가 나누는 글들을 읽어주세요. 저희가 쓰는 엄마에 관한 교환편지는 매주 한 편씩 올라옵니다. 



도영의 편지 2: 우리는 왜 엄마를 원망하기 힘들었을까 읽으러 가기.


<우리의 엄마들을 이해하기 위하여> 구독하러 가기.


이전 05화 우리는 왜 엄마를 원망하기 힘들었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