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3. 16
고루고루 옅게 퍼진 안개처럼 소망하던 것들이 좀처럼 잡히지 않던 날 너는 짜게 식은 아스팔트 저 멀리서부터 손을 벌벌 떨며 왔다.
내가 서서히 지워지는 달빛 부스러기 황급히 주워 담느라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하자 너는 엉엉 울며
사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는 걸
손 쓸 수 없이 자책했다. 곧장 눈 한번 흘깃 맞춰주고서 그래 그러니 보고 싶었어 일단 여기 널브러진 내 꿈들부터 함께 주워주지 않을래 했더니 너는 멎은 듯했던 울음을 입으로도 쏟아내기 시작했고
나는 아까처럼 눈과 귀를 막았다. 여름의 심장부였으니
별안간 들이붓는 거센 장맛비를 피할 겨를도 없이 모두 맞아버렸다. 이른 아침 일기예보에서 몇 번이고 주의를 주었건만 손에 들린 거라곤 지난여름 꺾어 들었던 장미가 전부였고
그때였나 하얗게 쏟는 빗속으로 네가 영영 사라졌다.
동시에 거짓말처럼 손에 들린 장미가 골골거리며 시들었고 거짓말 같은 그 일이 또 하나의 거짓말처럼을 불러들여
나 혼자 덩그러니 겨울 위에 쌓였다.
있지 내가 후회라는 걸 처음 해봐서 하는 말인데 진심으로 반성하고 지난날의 과오에 뼈저리게 슬퍼하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오는 거지 하며 무엇도 없는 납빛 하늘 올려다보고 입을 벌리자
그 안으로 알싸한 눈들이 들이닥치기 시작했다.
겨울 위에 쌓인 내 위로 눈이 한가득 쌓여 모든 말이 고요히 묻혀버렸고 나는 그해 여름 뙤약볕을 닮은 해를 만나자마자 눈 녹듯 눅눅하게 울고 말았다.
<오늘부터 장마가 시작될 예정입니다>, 하태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