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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Apr 10. 2021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2021. 4. 8



  문득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요. 꽤 오랫동안 저를 묵묵히 응원해줬던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겠지만, 저는 수많은 사람 앞에 서야만 하는 일을 무척이나 꺼립니다. 지금도 그러한 성격에는 쌀 한 톨 만큼의 변화도 생기지 않았고요. 시선에 한 움큼씩 담기는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잔재주만 있었지, 누군가를 더없이 즐겁게 해줄 만한 말주변이 없는 탓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아무렴 괜찮으니 당신들을 만나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가 잠깐이나마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기꺼이 내가 가진 시간을 전부 할애할 수도 있겠다고.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한 공간에서 만나는 것보다는, 소수의 인원을 여러 번 만나기 위해 내가 한동안 바빠지고 싶다고. 당신들을 여러 번 만나기 위해 전국 팔도를 다 돌아도 괜찮겠다고. 마음이 퍽 차분해지는 공간에 둘러앉아 향이 좋은 차를 함께 마셔도 좋겠습니다.

  그간 어떻게 살아왔냐고. 너무 버겁지는 않았냐고. 그래도 꾸역꾸역 열심히 살다 보니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는 날도 오지 않았겠느냐고. 그나저나 이제 반가웠던 이 봄도 다른 약속이 있어 멀리 가려 하는 것 같다고. 올해 여름은 꽤 더울 거라니 각별히 조심하자고. 우리 이러고만 있을 게 아니라 맛있는 밥이라도 먹으러 가는 건 어떠냐고. 이렇듯 시시콜콜한 대화라도 당신들과 함께 나누는 거라면, 저는 왠지 숨을 헐떡거려야만 할 정도로 크게 웃을 것만 같습니다.

  나는 어찌해도 글을 쓰는 사람이니까, 내가 쓴 글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자. 그들이 내 글을 읽고서 무너진 마음을 다시 일으키고, 죽고 싶던 마음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고, 미워하던 사람을 한 번쯤 용서할 수 있게 되는 것을 멀리서나마 지켜보는 일만을 사랑하자. 이렇듯 외딴곳에 표류한 마음을 아슬하게 지키며 지금껏 달려왔습니다. 하지만 역시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또 다른 사람의 따뜻한 온기더라고요. 저 또한 어쩔 수 없는 사람인지라, 나와 무언가를 수도 없이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온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쪼록 다들 지금처럼만 잘 견뎌내고 있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 행복해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가끔은 슬픔이 가져다주는 것들 덕에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얻을 때도 있으니까요. 제가 오늘처럼 당신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돼서 이제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없는 지경까지 닿게 된다면, 그때는 제가 먼저 만남을 간곡히 청하겠습니다. 참 이기적이지요? 이렇듯 저는 늘 제멋대로인 사람이라 종종 누군가의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런 저라도 괜찮다면, 앞으로도 저의 시선에서부터 태어난 글을 아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활자가 되어버린 저의 삶을 늘 기다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얼굴을 마주하고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겁니다. 정말이지, 머지않아. 곧 여름의 초입에 닿게 된다면, 제가 좋아하는 비도 그침이 없을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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