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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Apr 11. 2021

아빠의 학창 시절

2021. 4. 11


좀처럼 그런 적이 없었는데, 요즘 들어 아빠를 보며 자주 안쓰러움을 느낀다.  혼란스러운 감정을 동정이라 칭하기엔 자식  도리가 아닌  같아서  멋대로 ‘슬픔이라 부르기로 정해놓고는 안도했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번쯤은 타인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왠지 모르게 나의 아빠에게서 그런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약간 무너지게 만들었다. 언제까지고 나의 숨을 곳으로, 내가 어디서 어떻게 휘청거린대도 마법사처럼 불쑥 그곳에 나타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존재로 남아있을 줄만 알았던 사람. 자식들 앞에서라면 매사에  괜찮다는 듯한 웃음을 멀끔히 지어 보였던 사람. 그런 아빠 얼굴에서 주름 이외의 깊게  무언가가 이상하리만큼 자주 일렁이기 시작했다.


나의 아빠는 수십 년 전인 대학교 재학 시절, 학보사의 편집국장직을 맡을 만큼이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대학 졸업 후 사회로 나와서까지 관련 직종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린 시절 기억하는 아빠는 늘 한 권의 책처럼 과묵하면서도 사랑스러울 정도의 따뜻함을 걸음걸음마다 풍겨대곤 했다. 반항심이 여느 또래에 비해 지나치게 짙었던 학창 시절의 나에게도 그 흔한 역정 한번 낸 전 없었고, 수시로 휴대전화의 문자 메시지를 통해 한 편의 시보다도 더 깊고 멋진 문장을 내게 선물해줬다. 지금도 간혹 아빠는 내가 내면의 균열이 기승을 부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흔들릴 때, 그를 도대체 어찌 알고는 가슴께에 부드럽게 스미는 응원의 말을 알맞게 건네곤 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삼게 된 것도 단연 아빠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아빠가 나에게 그렇다 할 훈련을 시킨 것도, 펜대를 잡게끔 어떠한 강요를 한 것도 아니지만, 어쩌면 나는 은연중에 나의 아빠를 지독하게 닮고 싶어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의 나는 늘 아빠를 동경했었고, 아빠의 못다 이룬 꿈을 내가 대신 이뤄주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종종 했었던 것 같다. 그러한 무의식이 나를 지금의 이 길로 인도했을 것이고, 무언가를 글로 써낼 때마다 토해내듯 울음을 쏟는 순간이 잦은 나의 모습에서, 학창 시절 이보다 더한 고통을 치른 대가로 몇 편의 글을 얻어내곤 했을 아빠의 응고된 오랜 울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반대로 무언가를 계속 써내야만 하는 운명을 끝끝내 받아들인 아들의 마음을 아빠도 백번 이해하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내가 이제야 아빠의 낡은 심장의 표면을 조심스레 문지를 수 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너무하리만큼 자그마한 쾌락을 선사하는지 아빠는 너무도 잘 알고 있을 테니까. 그 잠시뿐인 쾌락을 잊지 못해 영혼을 깎아내면서까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쓰기 위해 발버둥 쳐야만 한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본 적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요즘의 아빠는 나와 마주칠 때마다 온갖 슬픔을 담느라 한껏 깊어진 눈동자를 하고 있다.


아마 자신과 똑 닮은 아들이

비슷한 힘듦을 짊어지게 된 이 기구한 운명이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던 탓이리라.


아빠가 절대로  글을 읽게 되는 일이 없었으면 싶다가도, 다른 한편으로는  수천 자의 문자를 통해 나와 아빠의 영혼이 아주 잠시나마 겹쳐지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더는  때문에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들놈이 생각보다 마음이 튼튼해서 앞으로 수십 년은 건강한 모습으로 글을   있을  같다고. 다행히도 울고 싶을 때면 곧장 만날  있는 친구도  두었고, 여건이  된다면 혼자서라도 서너 시간은 거뜬히   있을 만큼의 체력도 길러두었다고.  우스갯소리 같은 말들이 그에게 너무 늦지 않게 가닿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리고 당신도 가끔은 무수히 많은 지난날을 전부  앞에다 쏟아두고 소리 내어 울어도 좋다고. 어느덧 당신보다 덩치가 훨씬  커진 아들놈의 품에 안겨 야속한 세월을 탓해도 좋다고. 당신이 어쩔  없는 나의 아빠라는 사실을 아주 잠깐은 잊은 채로, 인간 본연의 직관적인 울음을 터뜨려도 아무렴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다. 여전히 어린 시절  세상이 푸르렀던  여름날에 머물러 있을 그의 순수한 기억을 아기처럼 보듬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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