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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Apr 05. 2021

유난히 커다란 달

버림


별안간 완벽히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우주의  귀퉁이에 홀로 남겨졌다는 쓸쓸한 느낌을.  드넓은 세계에서 더는 나를 반겨줄 생명체 하나 존재하지 않을 거라는 불안이 확신을 챙겨 입고,  주변을 유성우처럼 쏜살같이 비껴가는 이들의 콧방귀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온다. 그래도 밤은 계속되겠지. 밤은 계속되겠지. 밤은 계속될 거야.  하나뿐인 믿음이 나를 내일의 밤까지, 그다음 날의 밤까지도  자의 모습으로 가닿을  있게끔 한다.


매일 밤 내가 휘영한 달을 향해 쏘아 올리는 신호탄을 과연 몇이나 보았을까. 누군가의 눈에 띄기나 했을까. 그랬다면 그 사람은 그 불빛이 나의 하나뿐인 구조 신호였다는 것을 눈치챘을까. 살려달라고. 살려달라고. 소리를 너무 크게 지른 나머지 목소리를 잃은 자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그 모든 것을 단번에 알아채고 지금도 나를 향해 힘껏 다가오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게 누구든, 지금 나에게 오는 길이 조금 험해 늦는 것뿐이라 철석같이 믿고 싶다.


오늘은 달이 유난히 커다란 날이었다. 그에 나는 드디어 내가 달과 가까워지고 있다며 환호했다. 그만큼 놓아두고 온 것들에게서 영영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로. 더는 무엇과도 멀어지지 말아야지, 하던 굳은 다짐은, 또다시 나의 발 빠른 도망 탓에 그 생명력을 완전히 잃고야 말았다. 그러니까 나는 늘 애지중지하던 사랑과 삶과 꿈으로부터 자진해서 멀어져 왔던 것이었다. 그 누구도 나를 먼저 버린 적이 없었는데, 나는 늘 버림받은 쪽에 멀뚱히 서서 울음을 터뜨리기에 바빴다. 그렇게 소리 내어 엉엉 울다 지쳐 잠든 곳은 항상 밤이었고, 그 밤은 나에게 있어서 언제나 어두컴컴한 우주였고 부르튼 세계였으며, 외롭기 짝이 없는 폭우의 중심부였다.


이처럼 쓸쓸함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은 늘 방패 같은 생각 하나를 품고 산다. 그 무엇에도 뚫리지 않을 견고한 방패. 언제든 이 목숨 하나 거뜬히 끊어낼 수 있다는 생각.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다면, 그래서 내가 더는 견딜 수 없는 고독에 휩싸이게 된다면, 그 자리에서 훌쩍 소멸해버리면 되는 일이란 뒤틀린 자신감을 갖고 있다. 그러니 괜찮다. 이렇게 버림받은 채로 남은 시간을 홀로 건너가게 된다 한들 다 괜찮다. 수틀리면 당장이라도 다음 세상으로 넘어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무한한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삶이라도 다 괜찮다. 다 괜찮다. 다 괜찮다.


아무도 나를 찾아주지 않는대도 다 괜찮다.

너무 슬퍼 온몸이 녹아내린대도

언제든 사라지면 되는 일이니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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