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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r 31. 2021

평생토록 다 못 헤아릴 사랑

유 퀴즈 온 더 블럭


  깊숙이 사랑하는 사람을  하늘로 먼저 떠나보낸 이의 심정은, 도대체 얼마큼의 진폭으로 사정없이 일렁이는 걸까.


  얼마 전에 평소 애착을 갖고 자주 시청하던 프로그램인 ‘ 퀴즈   블럭재방송을 시청하던 도중, 정말이지 안타까운 사연을 이야기하는 출연자를 보았다. 그는 36년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게   가정의 가장이었다. 평생을 함께 살아가자 약속한 아내도  직장에서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었으니, 그에게 있어 직장의 의미는 무척 남달랐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렇게 그는 여느 평범한 중년 남성의 이야기를 MC들과 주고받다, 별안간 아내가 더는   없는 곳으로 떠나버렸다는 말을 꺼내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는 사랑하는 사람을 아무 힘없이 떠나보냈다는 상실감 탓에, 사실 정년퇴직을 하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의미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또한 그의 안타까운 사연에 너무 몰입하며 시청한 나머지, 코끝이 시큰해짐과 동시에 눈가가 눅눅하게 젖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루뭉술 맴돌던 눈물은  인터뷰 화면 직후에 나온 그의 영상 편지를 마주하자, 끝끝내 왈칵 쏟아져 나오고야 말았다.


  그가 영상 편지를 통해 사랑하는 아내에게 건넨 짙은 마음에는, 내가 아는 진심이란 진심을 모조리 눌러 담아 내뱉는대도 감히 흉내   없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그러는 나는  영상 편지가 나오는 장면을  번이고 다시 돌려 보며, 절대 온전히 헤아리지 못할 그의 펄떡이는 심장부를 잠시나마 엿볼  있었다. 이때 김동률의 ‘잔향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게 흘러나왔는데, 노랫말이  그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만 같아, 보는 이로 하여금  농도 짙은 울음을 자아내게끔 했다. 그가   하늘에서 먼저 터전을 꾸리고 기다리고 있을 아내에게 건넨 말은 이와 같았다.


  “사랑하는 박순애. 나란 사람 만나서 6 연애하고 29 동안 우리가 부부로 살았어. 인생 살다 보니 이런  저런 일도 많이 겪었고, 같이 살면서 나는 그대와 같이 살았던 시간들이  몸속에  녹아있어. 행복했어. 자기가 걱정하지 않게 아이들  뒷바라지하고 하늘에서 만났을   이렇게 살았다고 자랑할게. 그때 다시 만나면  많다고 흉봐도 좋아.  얘기 많이 있어.”


  그대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나의 몸에 전부 녹아있다는 .   문장에 진심을 담아  밖으로 꺼낼  있는 사람이 과연  세상에 몇이나 될까. 그리고 “그때 다시 만나면  많다고 흉봐도 좋아.  얘기 많이 있어.”라는 말은, 도대체 어느 정도 크기의 사랑과 그리움이 담겨있어야만 소리 내어 읊을  있는 걸까. 이렇듯 가장 좋은 말과 글이라는 ,  무엇도 아닌 평범한 사람의 진심에서 우러나온 평범한 마음일 것이다.   얘기라는  누군가에게는  시답잖은 소리들로 가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에게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깊은 속에 꾹꾹 눌러 담으며 참아야만 하는 안녕과도 같음을 안다.


  사랑이란 감정은   속에서부터 무럭무럭 번져 상대방의  전체에 울창히 자리 잡는다. 그렇게 걷잡을  없이 자라난  감정은 머지않아 말도  되게 넓은, 하나의 행성보다도  커다란 숲을 이루고야 만다. 그렇기에 사랑은 우리가 아무리 평생을 거닌대도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는 나는 부디 그가 지금의 생을 끝마친 뒤에 떠난 다음 생에서, 너무 사랑하는 아내와 못다  사랑을 마음껏 노래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진, 영상 출처 -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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