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업자득 自業自得

그날 밤의 격렬했던 섹스도 나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 말하던 그 입도

by 하태완


“너는 분명 다 거짓이었을 거야. 그날 밤의 격렬했던 섹스도, 나를 죽을 만큼 사랑한다 말하던 그 입도, 영원히 함께하자던 약속도 전부 다”

“말 그딴 식으로 하지 좀 마. 너 지금 흥분했어”

“뭐가 단정이라는 거야? 내 말이 틀렸어?”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난 틀리지 않았어.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네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다른 사람이 되어버릴 수 있는 거냐고”

“그야 우리는 헤어졌으니까. 더 이상 서로에게 사랑이 아니니까. 그러니 사랑한다는 말도, 섹스도, 영원을 약속하지도 않는 거지”

“그러니 거짓이었다는 거지. 너는 그 모든 것들을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친 채로 떠난 배신자일 뿐이고”

“너는 늘 그게 문제야. 줄곧 네 생각밖에는 할 줄 몰라. 우리의 이별이 나 혼자만의 책임이야? 나 하나 어긋난 거냐고. 그러는 너는 도대체 뭘 잘했는데? 내 입에서 그만하자는 말이 나올 때까지, 내내 어디서 뭐 하다 이제 와서 행패야 행패는”

“그러는 넌?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는 애가, 책임감도 없이 영원이니 뭐니 하는 말을 쉽게 뱉어도 되는 거야? 날 떠보기라도 했다는 말로 들리는데”

“......너”

“아, 그럼 네가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하기 하루 전에 맺었던 관계도... 그때 그 섹스도 너는 다 연기였겠다? 아주 수준급이야. 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느끼기는 잘도 느끼던데. 표정 연기부터, 손끝과 발끝까지 전부 연기였다는 거잖......”

“야! 신준형! 너 진짜 이 정도로 쓰레기 같은 새끼였니? 진작 알았어야 했는데. 이정도밖에 안 되는 줄 처음부터 알았다면, 너한테 내 아까운 3년 바치지도 않았을 텐데...”

“어련하시겠어”

“너랑은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는 듯해. 정말 딱 여기까지야. 그간에 만난 정이 있으니, 따귀 같은 건 치지 않을 테니까 내 앞에서 당장 꺼져버려”

“납득을 시켜”

“......뭐?”

“납득을 시켜보라고, 나를.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우리가 남이 되어야 하는지 설명을 해달라고”

“그야 당연한 거 아니야? 더는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내가 너의 애인으로 남아있을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정말 그게 다라고?”

“혹여 네가 인간의 유전자를 조금이라도 지닌 채 사는 놈이라면, 분명 반성이라는 걸 할 테지. 그럼 그 시간 동안 네가 나에게 했던 짓들이 스멀스멀 떠오를 거야. 쉽지? 그때, 네 몸통을 아주 세게 조여오는 후회들이, 바로 그것들이 우리가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야. 지금의 나에겐 너를 납득시켜야 할 의무도, 이유도 없지”

“......진짜 모질다, 너. 이 정도로 독한 사람일 줄은 정말 몰랐어. 그래도 서로 사랑해서 만난 건 사실이잖아”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지. 네가 조금 전에 그 모든 것들을 거짓으로 만들려고 했지만. 네 말대로 나는 너를 열렬히 사랑했어. 사랑해서 늘 견뎠고. 네가 나를 강하게 밀어낼 때도, 나는 온몸에 힘을 잔뜩 주며 버텨냈어. 저 멀리 우주 밖까지 튕겨 나간 느낌이 온 혈관을 타고 나를 지배하려 들어도, 나는 너 하나 사랑한다는 이유로 이겨냈어”

“계속 이겨내면 되는 거잖아. 나 하나 계속 사랑해보면 되는 거잖아. 이제 네 마음 조금이나마 알게 됐으니, 나도 노력이라는 걸 하게 될 테고”

“아니? 그러기엔 이제 내가 너무 힘에 부쳐. 그거 알아? 나 최근 들어 단 한 번도 활짝 웃은 적이 없어. 도대체 왜 그런 걸까, 하면서 몇 날 며칠을 생각해봤거든? 그러다 그 생각이 결국엔 어디에 닿았게?

“어디......”

“너에게서 하루라도 빨리 도망쳐야겠다고. 너에게서 한 발짝이라도 더 달아나는 게, 내가 다시 웃음을 되찾을 방법이라고. 그러니까, 나는 내 소중한 웃음을 꼭 되찾아야겠다는 말이야. 이제 조금 납득이란 걸 할 수 있겠어?”

“겨우... 겨우 그거 때문이야? 고작 잃어버린 네 웃음 되찾자고, 3년을 만난 나를 단숨에 등지겠다는 거야?”

“사랑이라는 게 원래 그래. ‘고작’일 뿐인 작은 이유 하나가, 두 번 다시는 넘어서지 못할 거대한 성벽으로 쌓여버리곤 하거든. 내가 아는 너는 결코 내가 쌓은 이 성벽을 무너뜨리지도, 넘어서지도 못할 거야”

“...”

“이만 가자. 너도 더는 할 말 없어 보이네. 나도 곧 약속이 있어서 말이지”

“어, 그래...... 그간 고마웠고 또 미안했어. 이건 진심이야. 소진아, 꼭 좋은 사람 만나기를 바랄게. 나도 잘살 거야. 반성할 건 하고, 원망할 건 또 하면서”

“물론이지. 좋은 사람 만나려고 너 떠나는 건데, 당연히 그래야지. 너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 사랑한다던 말도, 그날 밤 섹스도, 영원을 약속했던 것도 전부 진심이었어. 진심보다도 더 진심이었다면 믿을까. 뭐, 믿든 안 믿든 그건 네 자유지만. 안녕!”

준형이 소진과 나눴던 이 대화를 떠올린 건, 그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났을 때이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되었을 때였다. 준형은 현재의 애인에게 심각한 권태를 느끼고 있었고, 2년 전 소진이 자신에게 건넸던 말들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인정하고야 말았다. 사랑은 언제나 진심이다. 다만, 그 진심이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버티고 있을 거라는 사람들의 착각들이 큰 오해를 탄생케 한다. 뜨겁게 사랑하다 꺼진 심장에는, 늘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시커먼 재만 남는 법이다.

준형은 2년 전의 소진이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사랑한다는 말과 격렬했던 섹스와 굳건했던 약속을 등질 수밖에 없었는지, 그러는 과정에서 얼마나 큰 아픔을 삼켰었을지를 생각했다. 그리고는 이내 곧 뼈를 깎아내는 것과 감히 견줄 수 있을 법한 고통이,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번져오는 것을 느꼈다. 준형은 그 고통에 아무런 기척 없이 몸부림치며,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듯 여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했다. 그 후로 3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준형의 휴대폰에서는 여자친구에게서 답장이 왔음을 알리는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려 퍼졌다. 미리 보기 화면에 선명히 떠 있는 그녀의 답장은 이러했다.

“뭐? 그럼 어제까지 내게 사랑한다고 말했던 거, 그제 밤 잠자리까지 전부 거짓말이었던......”

<자업자득 自業自得>, 2020. 1. 27
하태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