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주의보

이버지와의 대화

by 하태완

“인간관계란 게 원래 조금 얄궂어” 아버지가 잔뜩 달궈진 불판에다 돼지고기 한 덩이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평생 함께할 것 같던 사람과도 돌이킬 수 없게 멀어지는 때가 오기 마련이지”

“참 어려워요. 속상하기도 하고......”

“그럴 만도 하지. 사람과 사람이 멀어진다는 것에 있어서는 결코 명확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으니까” 아버지가 주름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얼굴로 나를 지긋이 쳐다보며 말했다. 식당 바깥으로는 이번 여름의 마지막 빗방울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었다.

“그러게요. 눈에 띄는 이유라도 있다면 구겨진 관계 개선에 그리 큰 어려움이 없을 텐데요” 동시에 나는 아버지의 술잔에 술을 반절 즈음 채워 넣었다.

“하지만 시선을 더욱 넓게 펼쳐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보이지”

“두 가지요?” 나는 아버지가 따라주는 술을 두 손으로 받아내며 물었다. 아버지와의 술자리는 내가 스무 살이 되던 해 이후로 8년 만이었다.

“그렇지”

“어떤......”

“둘 중 하나의 큰 실수로 인해 감정적인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거나,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서 관심을 돌려놓게 되는 거야”

“그것 역시 해결책은 아닌 것 같네요......”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며, 아버지가 먹기 좋게 잘라 앞 접시에 올려놓은 돼지고기 한 점을 집어먹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보여 익살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다 큰 놈이 아랫입술 삐죽이는 버릇은 여전하구나?”

“제가 언제요! 고기가 뜨거워서 그래요, 고기가......” 아버지의 지적에 나는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부끄러움 탓인지, 불판의 열기 탓인지는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이 아빠도 아직 어려워서 그래. 너와 처지가 다를 거 하나 없어. 일맥상통이야” 아버지가 술잔을 들어 한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나 또한 그런 아버지를 따라 황급히 술잔을 비웠다.

“그럴 리가요. 저 보다 삼십 년은 더 사셨으면서......”

“예끼, 이놈아! 나이와 그런 고질적인 문제에서는 상관관계가 성립되지 않아” 아버지가 더럭 언성을 조금 높였다.

“아아, 제 말은 그런 말이 아니라......”

아버지는 주춤거리는 나의 말을 잽싸게 끊으며,

“아빠도 처음에는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내가 사회성이 아주 결여되어버린 걸까, 하며 자책하기 일쑤였어. 아빠가 딱 지금의 네 나이 즈음일 때였지. 정말 힘들었어. 여전히 같은 고민으로 힘들 때가 있지만, 그 빈도가 그때만큼 잦은 건 아니야. 해결책을 찾았다기보다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법을 터득한 거지”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이토록 자신의 속내를 투명하게 내비친 건, 나에게도 익숙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가게 종업원을 불러 냉면 두 그릇을 시킨 후에 다시금 말을 이었다.

“분명 너도 같은 생각을 해봤을 거야. 누구든 처음에는 남을 탓하다가, 그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자기 자신을 탓하게 되거든”

“...맞아요. 아버지 말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했어요” 나는 정곡을 찔린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고 있지?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거. 알고는 있는데, 마땅히 지금 처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물을 사람이 없어서 너를 탓하는 거야. 그렇지?”

“...네” 나는 취기가 조금 올라 감정이 격해진 탓에 콧잔등이 퍽 시큰해졌다.

“앞서 말했듯이 아빠에게도 인간관계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난제로 남아있어. 그래서 너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고작 이거 하나뿐이야. 너도 분명 어디선가 들어봤을 말일 테지. 그래도 생판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보다는 더 마음에 와 닿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무슨 말인데요?” 나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살짝 들어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네가 그 관계를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한들, 이미 너를 떠나고자 마음을 굳힌 사람은 일말의 미련조차 없어. 그리고 네가 특별히 신경을 쏟지 않아도, 네가 좋아 너의 곁에 머무르는 사람은 그 마음이 아주 단단하지” 아버지는 후식으로 나온 냉면을 받아들며 말했다. 그리고는 테이블 왼편에 놓인 식초와 겨자를 차례로 넣어 비볐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인 만큼 자주 들어왔던 말인데도, 아버지가 말해주니 새삼 신선한 충고로 다가오네요”

“굳이 비유하자면 날씨 같은 거야. 그냥 스쳐 가게 두는 거지.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볕이 내리쬔다고 해서 우리네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아니잖니. 다만, 잠시 마음이 일렁이는 건 어쩔 수 없어. 여러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면 조금 쉬울 거야. 비와 눈처럼 나를 잠시 흔들고 떠나는 사람이 있고, 볕처럼 내게 자주 머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아버지는 항상 대화함으로써 상대방을 수긍케 하는 묘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날씨라......” 나는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마음에 새기고 틈틈이 꺼내 보기에 부족함이 없네요”

“그리 받아들여 주니 고맙구나”

“그래도... 그 모든 것들을 다 떠나서, 어떤 소원보다 간절히 바라는 것이 하나 있긴 해요”

“응?” 아버지는 냉면을 한 젓가락 들다 말고는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지금 제가 믿는 사람들, 제 곁에 머무르는 사람들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래도록 함께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헤어진다는 건, 으... 정말 싫거든요. 물론, 제가 하기 나름이겠지만요” 나는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래, 그게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이지. 이야기 끝났으면 냉면이나 얼른 먹자. 면이 퍼지면 맛이 없잖아. 이거 봐, 벌써 조금 퍼졌네. 에이......” 아버지는 젓가락으로 냉면을 휘휘 저으며 눈살을 여덟 팔자로 찌푸렸다.

“드세요. 얼른”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버지의 말대로 사람과 사람이 멀어지는 것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전부라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음으로써 내 곁을 영영 떠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그 일이 있고 난 뒤로 야윈 내 세상에 꽤 차가운 비와 눈이 지나갈 때면, 하늘을 향해 고개를 치켜들어 늘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버지, 사람을 계절에 빗댄 아버지의 비유는 틀렸어요. 아무리 잠깐 지나가는 비와 눈이라고 할지언정, 그 여운의 크기는 다 다른 법이니까요. 때로는 곁에 자주 머무르는 볕보다, 그 모습이 뇌리에 더 강렬하게 각인되는 비와 눈이 제 생에 왔다 가기도 하더라는 거예요. 꼭 아버지처럼 말이죠”

오늘 아침 뉴스 끝자락의 일기예보에서는 또 한 번의 비 소식이 전해졌고, 그러는 나는 고개를 떨군 채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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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우주의보>, 하태완
2019. 8. 29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