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적인 섹스
“야, 김민준. 너는 나랑 섹스하는 게 행복하지 않아?”
“섹스할 때 꼭 행복감을 느껴야만 참된 사랑이라 할 수 있는 거야?”
“대개는 그렇지”
“내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던데”
“그렇다면, 그건 단지 애인을 통해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킴과 동시에 일시적인 쾌락을 느끼기 위함일 거야”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지만, 정상적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힘들지”
“소연아, 다 좋은데 네가 방금 한 말에는 동의할 수 없어”
“왜?”
“그렇잖아. 애인과 섹스를 할 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비정상적인 부류에 속하게 된다는 게...... 나는 인간도 다른 짐승들처럼 본능적인 욕구를 추구하는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섹스는 그 수많은 욕구 중 한 가지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일 뿐인 거고”
“......나는 네 의견에 더 동의하기 힘든데?”
“물론, 애인과 섹스를 할 때 행복감을 느껴야만 참된 사랑이라는 네 말이 완전히 틀렸다는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 말은, 연인 사이에서의 사랑을 꼭 섹스를 통해 증명할 필요는 없다는 거지.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경치 좋은 곳으로 놀러 가거나, 하늘 좋은 날에 두 손 꼭 잡고 함께 산책하는 것에서도 충분히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너는 왜 행복하지도 않으면서 나랑 섹스를 하는 건데?”
“좀 전에 말했잖아. 본능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고”
“그런 이유라면, 그냥 집에서 혼자 해결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렇지”
“그럼 앞으로 쭉 그렇게 하면 되겠네”
“네가 나와 섹스 하는 걸 원할 때도 있으니까. 내 나름의 배려야”
“미친...... 네 머릿속을 한 번만 들여다보고 싶어”
“남들과 크게 다를 것도 없을 거야”
“일반적인 사람들은 너처럼 생각하지 않아”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도, 너 같은 사람들에게 비정상적인 사람 취급을 받게 되는 게 두려워서 숨기고 살아갈 수도 있으니까”
“그건 네 생각이고”
“아니라니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애인과의 섹스를 그저 무르익은 한순간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여길 거야”
“원시인도 너처럼 그렇게 원초적인 사랑을 하지는 않았을걸”
“섹스는 연애를 하는 것에 있어서 극히 일부에 불과해. 앞서 말했듯이, 나는 이외의 다른 부분에서 네게 충분히 사랑을 표현하고 있어”
“정작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랑이 무슨 소용이야”
“너도 분명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을 거야. 다만, 네가 생각하는 연애의 기준에서 섹스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큰 탓에, 다른 부분에서 오는 감정들이 묻혀버린 것뿐이지”
“더 이상은 입 아파서 말하기도 싫어. 나는 나와 이렇게나 생각이 다른 사람과 더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고작 섹스 때문에 헤어지자고? 분명 웃음거리가 될 거야. 그래도 괜찮다면 어쩔 수 없지”
“너처럼 애인과 하는 섹스를 ‘고작’이라고 표현하는 사람들에게 받는 조롱 따위 두렵지도 않아”
“언젠간 너도 내 마음을 이해하는 순간이 올 거야”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라야지. 그건 정말 죽은 것과 다름없는 마인드니까”
“슬프네”
“이제는 네가 정말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는지도 의심스러워. 이만 갈게. 다신 볼 일 없었으면 좋겠어”
“잘 가. 그래도 너랑 했던 섹스는 좋았어”
“미친놈”
소연은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고, 민준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입에 미소를 띤 채 누군가와 카톡을 주고받았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민준과 소연의 주변 지인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남자가 바람이 났다느니, 무성애자라느니, 여자가 섹스에 미쳤다느니 하는, 둘의 이별 이유에 대해 여러 소문이 무성했다. 그와 동시에 민준의 SNS에는 새로운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소연과 헤어진 지 딱 3일째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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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정성스러운 이별 핑계>, 하태완
2019. 8. 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