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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태완 May 24. 2020

고통의 여름 속 보통의 바다

오 착한 그대는 제발 귀한 숨을 놓지 마시라


바다를 보니 꿰맨 심장의 통증이 한결 낫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훨씬 넓을 수도 있다 그럴 거다 싶었거든요

여기 이곳에 나 하나 별난 색으로 저문다 해도
저 바다는 끝없이 허연 포말을 일으키며
삶에서 꿈으로 급한 약속을 갈 것입니다

나 이제는 버거운 일을 발치에 툭 던져두고
서서히 기어가다 풀썩 누워도 되지 않을까요

바다를 보니 그저 흘러가는 일이라는 게
퍽 쉬워 보이기도 하는데 겁 많은 손이 말썽을
마지막 삶을 절벽 끝에 매달고 있는 고통처럼

어쩔 수 없는 낮이 죽고 어둑한 밤이 와서
바다는 검은색을 타고 태어난 거라지만
그 넓은 마음은 사실 색을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마주한 고요가 이따금 화를 내는 것을 보며
문득 파도가 크게 쓸어주고 간 것이 슬픔이기를 바라고요

전부 다른 모양으로 비틀어져 부서진 모래들은
작별을 고할 틈도 없이 저편으로 사라져갑니다
그간에 내가 잃어버려왔던 우리라는 이름처럼

오 착한 그대는 제발 귀한 숨을 놓지 마시라
온몸이 빠르게 저릴 만큼 무섭다면 이 손을 꼭 잡으라
 
어푸어푸 잠겨 죽는 삶은 지나치게 안쓰러우니
오 착한 그대여 난 그대 있으면 숨 없이도
막혀 죽지 않아요 생의 팔 할이 사랑인 사람처럼

바다를 보고 있던 우리 눈꺼풀의 방향에는
미온의 물이 속절없이 괴어들다가도
한 줌 한숨이 안도의 소리에 싸여 불려 나옵니다

오 착한 그대는 제발 미운 삶을 빼앗기지 마시라
온몸이 빠르게 저릴 만큼 무섭다면 내 품을 꼭 안으라
 
노련한 바다 내음과 아래로 그어진 물길들이
눅눅한 계절에 조화롭게 섞이려 들 때에
우리는 과거를 주워 담고 더 먼 앞을 뱉어내자

오 여린 그대여 부디 넘어진 오늘을 말끔히 잊으라
문이 굳게 닫혀있다면 여기 나를 활짝 열고 살아가시라
무너지는 여름 따위 섣불리 겁내지도 마시라

_
<고통의 여름 속 보통의 바다>, 하태완

2020. 5. 23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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