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태완 Jun 02. 2020

영원한 여름은 없다

사랑도 함께


  여름이 오면 어쩔 수 없는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여기서 저기로 잔뜩 휘청인다. 오늘처럼 쾌청한 여름의 초입에 수풀이 우거진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면, 들뜬 손을 힘차게 흔들 만큼 반갑다가도 걷잡을 수 없게 깊숙이 먹먹해진다. 삶에 그렇다 할 큰 사건이 생긴 것도 아닌데, 내내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그해 여름 나를 사랑했던 사람은 시간을 잠깐 멈추는 능력도 있었다. 그 순간만큼은 나와 그 사람, 우리 둘의 호흡과 몸짓만이 진실이었다. 그 외의 모든 것들은 분명 다 거짓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으나, 하염없이 주고받던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한 후로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제정신일 수가 없었다.
  이번 여름은 아주 조용히 지나가게끔 가만히 놔두고 싶었지만, 언제나 그랬듯 이성은 나를 지나치게 멀리하고 본능에 충실한 눈동자가 나를 전부 비추는 저 거울을 노려본다. 늘 잊고 싶은 기억은 마음처럼 되지 않고, 잊고 싶은 사람은 노력하면 할수록 실재처럼 자명해진다. 이제는 알고 있다. 그해 여름과 그 속에 들어앉아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그 사람이 통째로 증발해버리지 않는 이상, 나는 분명 이듬해 여름과 그다음의 여름까지도 조금씩 눅눅해질 거라는 사실을.
  오늘은 품을 그리워하다 울창한 숲에 몸을 던질 뻔도 했다. 나를 세게 안아주는 그 사람이 참 좋았었는데, 텅 빈 여름이 내 생에 다시금 닿았다. 미치도록 사랑하던 계절을 더는 반기지 않게 됐다. 영원히 함께하자던 말은 갈 길이 바쁜 바람에 엮여 저기로 질질 끌려갔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누구도 잘한 거 하나 없는 사랑이었다.
  나는 꼭 그해 여름이 영원할 줄 알았지만, 바라던 영원한 여름은 손금의 가파른 경사에 휩쓸려 멀리로 떠내려갔다. 그 이후로 내 삶에 영원한 여름은 없다. 영영 없다. 아무도 없는 이 여름에 정말 아무도 없는 내가 쉼 없이 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시퍼런 바다의 물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