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태완 Jun 05. 2020

깊은 여름날의 구애

네 안에 빛나는 청록의 행성을 빠짐없이 유람할게


여기저기 해어진 거적 같은 내 남루한 영혼을
너의 청초한 품으로 황급히 불러들여 줘
나 아무런 체증도 없이 한달음에 흘러 갈 테니
그 고운 눈으로 내 생을 가여이 훑어 보아 줘

그럼 나는 너의 연홍빛 언어를 귀담아 들을게
네 안에 빛나는 청록의 행성을 빠짐없이 유람할게
부서지는 파도가 애정 없는 시간처럼 정교하게
투신인 듯 잔혹하게 네게로 곤두박질 치려 한다면

나 하나 잠겨 죽는 것으로 빈틈없이 다 막아줄게

돌연히 내가 이름조차 붙일 수 없을 만큼이나
어둡고 칙칙한 늙은 그림자 속으로 숨으려 든다면
저무는 석양빛으로 굳게 잠긴 문틈에 스며들어 줘

네가 힘차게 뻗은 꽃잎향 구원과 싱긋한 음성이
힘없이 구부러진 내 주눅과 심술에 가까스로 닿으면
활기를 되찾은 나는 그 사이 붉게 잘 익은 열매를 따다가

억겁의 세월 일용할 양식으로 전부 다 네게 건넬게

울먹이는 어제와 영영 가질 수 없을 세계가
제아무리 짙은 푸른빛으로 너를 삼키려들어도
너는 그곳에서 도망쳐 사랑하는 나와 어디로든 가자
_
<깊은 여름날의 구애>, 하태완
2020. 6. 5 씀.

작가의 이전글 영원한 여름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